칠흙같이 어두운 밤. 곤히 잠든 벽소령에 일제히 4시가 되니 음의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마다 선택한 셀폰의 자명종 소리. 4시 기상을 위해 맞춰놓은 알람소리가 일제히 울리니 미니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방불케 하는.. 다들 잠자리 정리하고 생리현상 해결하고 산짐승으로 오해 받지 않을 정도로 매무새 다듬고 여장을 꾸려 나오니 출발이 5시에 이루어집니다. 헤드램프와 손전등으로 앞길을 밝히며 천왕봉을 향한 8시간의 행군이 시작됩니다.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넘어 세석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에 올라 지리산군의 장대한 흐름을 조망하고 이른 점심 해결한 뒤 산청 중산리로 하산. 이런 일정이라면 오늘도 10시간 이상의 힘든 행군이 예상됩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초(1967년)의 국립공원이자 산악형 국립공원 중에서는 최대의 면적을 보유하고 있다하니 그 산군의 거대함이 상상이 가능하겠죠. 경남의 함양. 산청. 하동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에 걸쳐있고 한다음으로 높은 1915미터의 천왕봉이 백두대간의 마지막 정기를 표출하는 민족의 명산입니다. 산세가 깊고 험하여 빨지산의 근거지이었기도 하는 등 과거 항전의 요새로 이용되던 역사의 산이기도 합니다. 관리공단 측에서는 지리 10경을 선정하여 추천하는데 3대가 적선을 해야 겨우 볼수 있다는 장엄한 천왕봉 일출이 제 1경이요 고색청연한 기암괴석과 고사목과 원시림이 특이한 연하 선경.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침식을 거듭하여 깊고 수려한 협곡을 만들어내니 칠선 계곡. 시리고록 밝은 달이 능선으로 차오르는 풍경이 일품인 벽소 명월. 삼홍소라 불리는 지리산 최고 피아골의 단풍. 만산에 홍 그것을 비추는 물도 홍 이에 물들어 버린 사람들의 얼굴도 홍이라 삼홍소. 자연이 만든 가장 장엄한 잔치라 표현된 황금빛 반야봉 낙조. 산마루 물결 사이로 가득채워진 안개와 구름이 선경을 자아내는 노고단 운해. 오뉴월 봄날에 만개해 화려함을 뽐내는 세석 철쭉. 굉음을 울리며 힘차게 낙하하며 영롱한 칠색무지개를 뿜어내는 불일 폭포. 지리산을 품고돌아 남해에 이르는 섬진강 맑은물이 차순으로 소개된답니다.
완전 무장을 하고 전의를 다지며 첫발을 내디디니 5시가 거의 다될 무렵. 어둠을 걷어내며 풀섶에 묻은 이슬을 차며 장도의 길을 열어갑니다. 부상에 체력고갈로 3명과 이들을 안내할 1명이 남고 책임을 다하는 비장한 각오로 오직 별빛과 헤드램프의 불빛에 의존한 채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지리산 최고봉을 향해 나아갑니다. 비록 지리 제일경 천왕봉의 일출은 볼순 없겠지만 이 지리의 한 정점 고갯마루에서 찬란한 해뜸을 맞이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버리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힘차게 나아갑니다. 무념에 무상으로 걷고 걷다보니 동녘 하늘 물들이며 어두운 산위로 서서히 차오르는 조국의 희망찬 태양. 모두 함께 결연하고도 자긍이 물씬 풍기는 표정으로 그 일출을 대합니다. 아마 모두들 오늘의 이 해맞이가 어느 때 보다 감격스러웠을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그 감동을 가슴에 품고 길을 재촉하니 이내 세석에 당도하였고 꿀맛같은 아침식사를 즐깁니다. 인스탄트 음식의 혁명이랄수 있는 다양한 3분 요리 레시피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간단없는 up and down. 마침내 천왕봉에 올랐습니다. 기나긴 여정. 그 정점인 천왕봉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먼저 반겨줍니다. 햇살이 환하게 눈부시도록 찬연하고 가을빛에 젖은 주변 산정들이 가득 시야에 차고 굽이치는 산마루의 물결이 푸르스름한 안개속에 이어집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 까지. 그 역사의 현장에서…’라는 표시판 앞에서 모두들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의 일정이 곧 지리종주이며 마치 자신의 여정을 축복해주는 듯 하여 그런가봅니다. 정상을 오른자에게만 주어지는 보상과 포상을 마음껏 누립니다. 성취감 뒤에 오는 자족 그리고 자부심. 그래서 행복합니다.한없이 한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