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좋아하는 매니아로서 늘 생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였는가?’ 이다. 인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 위한 사상, 우리 족속들의 지배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 나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한 결정, 나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몸부림…
예수, 석가모니, 공자들은 인류에게 사상적 영향을 위해서 삶의 방향을 결정을 했고, 진시황제, 칭기스칸, 알렉산더 대왕은 보다 넓은 왕국의 소유를 위해서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극소수의 성인이나 영웅이 아닌 세인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시대적 상황이 그 결정을 쉽게 단정해줄 것이다. 중세, 근대에는 ‘생존’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유아 생존율도 낮고, 기아율도 높고, 질병으로 사망도 쉬웠기에, 살아 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했을 것이다. 간혹 병없이, 먹을 것 충분히 잘 살고 있어도, 전쟁이 도발되면 병사로 차출되기에 살아 남는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목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현대로 들어서면서 많이 바뀐다. 질병사, 기아사, 재난사등이 현저히 줄고, 대전쟁도 사라져서, 인간의 생명이 자연이 주어진 최대한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현대는 이 자연적 생명을 최대로 연장하기 위해서 활동부족을 운동으로 보완하고, 너무나 싸고 넘치는 음식과 싸우기 위해서 안먹는 다이어트라는 것을 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없어져서, 이제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삶의 결정은 ‘생존’이 아닌 ‘돈’으로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극자본주의 미국에서는 ‘돈’이 그 어느 요소보다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자녀들을 보내려면, 그들이 노력해서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기부금 이라는 ‘돈’으로 가능하다. 기부금으로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실력이 모자라면, 최근 뉴스에서 볼 수 있듯이 뇌물등을 통해서 가능했다. 물론 이 뇌물을 사용한 학부모들은 구속이 되었지만. 어느 나라에 미국대사로 나가고 싶으면, 대통령에게 선거자금 두둑히 지원하면 된다. 이 잘못된 관례로, 일부 대사들은 발령국에 대사임명전에는 방문한적도 없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대기업 CEO들이 대거 입각했다. 행정에는 전혀 경험이 없어도, ‘돈’에 성공한 경력으로 내무부, 환경부, 교육부, 국무부 장관들을 맡았다.
“그건 너무했다”고 세인들은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이 ‘돈’열차에 올라탔다고 본다.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해서 조금 더 위험한 투자에 모험하는, 좋은 명품을 조금이라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 아니 명품짝퉁을 사는 이유도… 다 ‘돈’이 삶의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바이어는 좋은 주택을 최대한 싸게 구입하는 방법, 셀러는 자신의 주택을 최대한 비싸게 파는 방법을 간구하고 있다.
사실상, 삶의 원동력이 ‘돈’이라는 현실이 슬프거나 분노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는 단지 ‘적응’이라는 강력하고 놀라운 능력으로 살아 남은 인류의 현시대의 모습일 뿐이다. 가끔 SNS 상에서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는데, 이 또한 ‘돈’의 세상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처절한 외침으로 보여진다.
우리가 몇백년전의 우리 선조들이 먹고살기에 얼마나 힘들어하고, 연명했는지를 의아하게 바라보듯이, 우리 후세들은 우리가 얼마나 ‘돈’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의하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