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예찬

너무 요원한 것 같으니 하와이 이민까지는 가지 말자.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이민 온 80년대 중후반에서 부터 이야기 해보자.
80년대 중반에 젊은 30대 였다고 해도 지금은 족히 환갑 이쪽 저쪽에 걸쳐 있을 것이다. 요즈음의 환갑이 운좋으면 어디가서 막내 취급받기 딱 좋은 나이지만 그래도 생계를 위해 무엇인가 다시 시작하기에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아마도 장성한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 아이들의 혼사도 주어진 여건속에서 최대한 극진히 해주고 싶을 것이다, 또 그들에게는 아직 늙었지만 노인 아파트에 따로 사는 부모가 있는 행운도 있을 수 있다.

 

 

나쁜 조명으로 보면, 문제는 여기에 있다. 생계현장에서 뛰는 현역이면서 장성한 아이들에게 종당에는 부러진 숟가락까지 줘야 마음 편한 세대요, 그렇치 못한 경우 자칫 불행으로 여길 수 있는 그런 상처받기 쉬운 세대다. 동시에 홀로 사는 부모님에게도 무심할 수 없는 세대일 것이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은 동란이후에 태어나 한국에서 부터 가엾은 세대였다. 어려서는 콩나물 교실과 오전 오후반등 넉넉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에 성장을 하였다. 자라서는 범람하는 산업화 물결에 치여 학창과 낭만도 그리고 젊음마저도 기를 펴지못한 애틋한 세대이더니, 각자 가정을 이룰 쯤에는 핵가족과 산업화의 시행착오와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겪었다. 그리고는 늦게 자각하여 깨어난 부모들로 부실한 상속을 봉제사의 의무로 맞바꾼 세대이기도 하다.

 

 

 

이민을 와서 보니 더욱 그들의 발자취가 가긍스럽다. 이미 기존하는 언어장벽에다 주산을 배우다 얼떨결에 컴퓨터와 베스트바이 속에 떨어진 듯 하다. 지구 역사상 컴퓨터를 정규교육으로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로서 컴퓨터 시대를 살아야하는 첫번째 세대이니, 생계는 물론 양육과 봉양의 의무를 두 어깨에 짊어진 어느 것 하나도 만만치 않으면서도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질책을 제일 먼저 받는 그런 불우한 세대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밖에 나와 살다보니 우리 모두 경험했듯 물과 뭍에서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문화적, 언어적 양서류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밝은 조명 아래서 보면, 그 세대가 꼭 불행한 것만 같지는 않다. 우선 세대의 역활이라도 있는 것인지 구멍파는데는 칼이 끌만 못하고, 쥐잡는데는 천리마가 고양이만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들의 결핍이 그러니까 극복의 대상으로서의 가난이었지 증오의 대상으로서의 가난이 아니었듯 구렁이 알같은 밑천을 착실히 쌓아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부족한대로 윗대와 아랫대를 두루 이해하니 훈훈한 고향을 가진 마지막 세대였으며, 아직도 사람 냄새나는 장터 국밥을 기억함이나 올드팝과 세시봉 그 아날로그의 감성을 추억하는, 이른바 시대를 뜨겁게 부대끼는 알몸의 낭만들, 그런 낭만지수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뿐만인가 단칸방과 초기의 혹독한 시절의 배고픔까지 기억하는 세대이다 보니, 특히 남의 나라 땅에 와서 통상 하향 편입을 하여 꿔다놓은 보리자루이거나 한입 가득 불평을 물고 살기 쉬운데 돌아보니 참으로 제 때 내린 비처럼 모두들 대견하게 견디고 배워 미루어 짐작컨데, 나름의 작은 성취 또한 이룬 것이 사실이지 아닐까한다.

 

 

 

빼어난 풍광과 절경은 그 자체로는 시가 되지 못한다 했다.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의 해석과 시선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요컨데, 삶이 그런대로 넉넉하려면 어지간 하다면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윷놀이도 잘 놀아야 하지만 역시 윷판도 잘 서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