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만지기만 해도 통증이 오는 병

얼마 전에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일이다. 치과의사를 기다리면서 치과 의자에 누워서 필자의 치료를 돕는 금발의 백인 아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필자가 근무 중에 잠깐 갔었던 관계로 수술복을 입고 있었고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느냐 묻기에 통증의학과 의사라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이 아가씨가 눈이 커지면서 여러가지 질문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사연인즉 이 아가씨가 학창 시절에 운동을 하다가 사소하게 손목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통증이 낫지는 않고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한 쪽 팔이 전부에 걸쳐서 통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원인도 모르고 여러 의사를 보러 다니면 검사를 받았는데 통증의학과에 가서야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도 통증의학과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병세에 거의 호전이 없어서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면서 통증만 조절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가면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일반인들로서는 무릎 관절염도 들어 보았고, 허리 디스크도 들어 보았으며, 어깨 오십견도 들어보았겠지만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라는 진단은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통증만 전공으로 하는 필자 입장에서는 드물지 않게 보는 질환이고 이런 병을 가진 환자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병은 무슨 종양이나 골절, 감염병 처럼 진단이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의 환자는 외상, 기브스 치료, 관절염, 신경통, 화상 등 다른 질환으로 통증을 앓았다가 원래의 원인은 사라졌더라도 통증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단지 통증의 여운만 좀 남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 원래 손상 부위를 넘어서 한 쪽 팔이나 한 쪽 다리 등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통증의 정도도 매우 심해지며, 심지어는 살을 잡거나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이런 질환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때는 의사들 조차도 환자가 꾀병을 앓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1년 전에 팔목이 부러졌다가 이제 치료를 받고 뼈가 잘 붙었는데 지금은 팔에 손을 대개만 해도 아파서 견딜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과거에 이런 환자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차 오해를 받았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에 대해서는 경구 스테로이드, 소염제, 항간질약, 항우울제 등 여러가지 약물치료가 시도되고 있고, 물리치료나 성상 신경절 차단술이나 요부 교감신경 차단술과 같은 주사요법을 시행하기도 하고, 식이요법이나 인공신경치료 등이 효과를 보았다는 보고도 있다. 치료 방법이 많다는 것은 사실 어느 한가지 치료도 딱 떨어지게 완치를 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치료법 중 어느 치료가 그래도 증상의 완화에 큰 도움이 되는지는 분명히 찾아볼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