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적 진단은 한의사에게 큰 의미가 없다
현대의학이 우리 몸을 작게 나누어 분석하여 거기에 맞춘 진단과 치료를 행한다면, 한의학은 우리 몸을 큰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묶어서 분석한 후에 그에 맞춘 진단과 치료를 행한다. 그래서 한의학적인 진단명이 현대의학적인 치료를 하는 의사들에게 별 의미가 없듯이 현대의학적 진단을 통한 분류한 병명 또한 한의사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니, 허리가 아파 한의원에 내원 하였는데 아픈 곳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손목을 짚더니 갑자기 혀, 귀, 코의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더 나아가 대소변의 모양과 색까지 물어보기 시작하는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이러한 한의학의 진단과정이 사실은, 제대로 된 효과적인 한의학 치료를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필수 과정이 된다.
전체는 부분을, 부분은 전체를 대변한다
한의학에서는 손목의 일부분만을 분석하는 방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오장육부의 상태를 논하고, 혀의 색변화를 통해 몸 전체의 한열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손톱에 생긴 줄무늬를 보고 심장의 이상을 찾아낸다. 이렇게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읽어내는 진단법의 원리는 ‘인체는 소우주’라는 한의학만의 독특한 개념에 그 뿌리를 두는데, 이는 한의학적 세계관의 근본 원리중의 하나이다.
손목의 맥을 상중하로 나누어 상부의 맥인 촌맥은 상체의 병증을 점검하고, 중초의 관맥과 하초의 척맥은 각각 인체의 복부와 하체의 병증을 점검하는데 사용하는 맥진법이 이 ‘소우주 이론’이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또 얼굴의 특정부위를 보고 진단하는 망진법 또한 마찬가지인데, 얼굴 전체를 몸에 대응하여, 이마는 심장, 턱은 신장, 코는 비위, 좌측 뺨은 간, 우측 뺨은 폐에 해당한다고 보아 각 부위의 얼굴색이나 피부의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기도 하고, 또 귀만을 따로 떼어 몸 전체에 대응하여 각각의 대응점을 눌러보면서 몸의 전체적인 이상을 짐작한 후에 더 자세한 진단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소우주 이론은 진단에서 뿐만 아니라, 한의학적인 치료에도 직접적으로 응용 된다. 귀를 사용하는 이침 요법의 경우, 통각으로 반응하는 각각의 대응점들은 진단뿐 아니라 침치료에 사용되는 경혈이 되기도 한다. 또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경혈과 경맥은 우리 몸의 전체 상태를 읽어내기 위한 일부분으로서 사용되지만, 인체의 전체적인 균형을 자극하여 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부분으로도 사용된다. 신장의 기능이 안 좋아지면 발바닥 가운데 위치한 용천혈이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바로 이 용천혈을 신장의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한 주 경혈로서 사용하는 식이다.
프랙탈 이론으로 비춰보는 한의학의 과학성
그렇다면 현대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볼때 이러한 한의학식 진단법과 치료법은 어느정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을까? 아직은 가설단계에서 다양한 검증을 받고 있는 상태지만,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이 한의학의 ‘소우주론’은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또 희자되고 있는 꽤 진보적인 물리 이론중의 하나인 ‘프랙탈이론’과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아직은 가설 단계이긴 하지만 꽤나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검증을 받고 있는 ‘프랙탈 이론’의 핵심은 ‘부분이 전체를 대변한다’는 개념으로 이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소우주’ 개념과 원리상 동일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언제나 부분은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과 복제성을 지니고 있기에, 가장 작은 구조의 연구를 통해서 가장 큰 구조인 전체 우주의 모습과 생성과정을 밝힐 수도 있고, 좀 더 큰 구조물의 연구를 통해 아직까지는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구조의 원리도 파악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별-은하-은하군-은하단-우주에 구조적인 유사성이 있고, 미시적으로 보면 소립자-원자-분자-세포 소기관-세포-인체부위-인간도 크기는 다르지만 구조적으로 닮아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체다.
이 프랙탈 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관계가 소립자에서 우주전체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라면, 그 일부분이 되는 인체와 인체의 부위에서도 당연히 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부분이 전체를 대변한다’는 이 가장 오래된 한의학 원리가 첨단을 대표하는 현대물리학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한의학의 비과학성이라는 측면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