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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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왔다가 더디 가려는 봄이던가!
벌써 흐드러지는 벚꽃이 지고도 남았으련만,잔잔한 바람과 함께 술렁이는 꽃무더기의 일렁임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듯하다.
어찌 너희만이 미련이 있을까!우리네 삶 또한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미련 투성들이다.
”참 바보다.그치?”하고 울먹거리며 후회해본들 아득한 봄날,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에 찡그리듯 글썽이는 눈물을 얼른 숨기고는 툴툴 일어설수 밖에 없는 거다.
얇은 가디건을 걸쳤지만 그래도 춥다라는 말이 생각 날정도로 한기를 느낀다.
그렇다고 두꺼운 옷을 입기에는 스스로가 촌스러움을 피하고 싶어 애써 추위를 참는다.
다만 무심코 지나칠뻔한 봄의 먹거리들로 따뜻한 밥상으로 대신할 수 밖에…

하늘하늘거리는 연초록의 이름모를 잡초조차 산뜻하고 어여쁘다.
그 가운데서 마치 머리를 잘라내도 다시 길어지듯 쑥쑥이 부추는 담대히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나가듯 햇빛이 좋아 그 곁에 머물렀다가 어느세 얇고 연초록의 부추를 추려내기 시작했다.
양이라고 해봤자 쥐꼬리만큼 한주먹 뜯어서는 콸콸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어 내니 그 빛깔이 혼자보기가 아깝도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GREEN이라는 컬러에 새삼 “이처럼 어여뻤을까?”라고 작은 동요가 일렁인다.
깊은 색감이 아닐지라도 계절의 출발이 그러하듯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의 빛깔이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에 작은 오솔길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꽃도 흩뿌릴 재료로…그리고 밟힐세라 숨죽이며 자신의 힘을 키웠써야할 여린 민들레 잎도 함께 봄을 한껏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먼저 따뜻하고 펼쳐지지 않은 한그릇 밥상으로 설정하고 나니 무엇을? 어떻게? 봄을 담아 낼까가 문제로 닥친다.
컬러를 살려야할까?
맛을 독특하고 다르게 살릴까?
결국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속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들을 제대로 풀지도 못할진데 이조차도 애써 고민해 무엇하랴 싶어서 컬러,맛 두가지를 담기로 한다.

먼저 소프트한 베이직 컬러로는 소프트한 브라운 현미로 정하고,콩알콩알 연노랑의 콩나물로 리듬있는 악보로 만들어 주고,
아이보리 아삭한 무우를 채썰어서 함게 섞는다.
그리고 정성을 다한 밥을 지어 내는 과정을 지나다 보면 적절한 타이밍에 맞추어 연초록의 맑고 맑은 부추를 넣어 주고 한숨 기다린다.
촉촉하게 윤기가 흐르는 밥에는 벌써부터 쫑알쫑알 지저귐의 새소리가 나듯 경쾌하다.
더불어 맛으로는 정통을 고집하는 간장 양념 소스도 최고이련만 오늘만큼은 내게 별반 흥미롭지가 않다.
그래서 나름 정해 놓지 않은 유령 레서피를 동원해 즉석 비빔소스를 만들까한다.
일단 간부터 마추려면 짭짤한 굴소스 한스픈에 적당하게 톡 쏘는 매콤함을 더하기 위해 고추장이 아닌 핫소스로 균형을 준다.
이 균형에 조금더 달달함을 원한다면 매실청으로 더해주고,아주 작은 재미를 더한다면 참기름 대신에 올리브오일로 향을 돋궈보자.
여기까지는 봄을 담기 위한 초벌 작업이라면 완성에 이르러서는 어떤 그릇에 담을까도 고민해볼일이다.
우선은 보색 대비를 완젼히 무시한 그레이에 가까운 오목한 블랙 접시에 작고 쌉싸름한 민들레잎을 깔아 준다.
그리고는 봄을 한껏 담은 부추 콩나물밥을 올려주고,살구색 연어 스테이크를 얹혀준다.
작지만 소소한 봄을 담은 밥상이니만큼 노란 민들레꽃을 따다가 여기저기 흩뿌려 우아한 쎈터피스로 마무리 해준다.
이처럼 어느것 하나도 작고 소소하지만 어여쁘지 아니한것이 없다.
모든지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는것을 우리는 어찌 모를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피해보는것일지도…멈추지 않은 시간을 붙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봄을 담아본 이 순간의 설레이는 마음만큼은 오롯이 내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