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마다 떼를 지어 몰려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불심검문으로 조사를 받고 붙잡혀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있다. 누군가가 “별안간 이민국에서 나와서 히스패닉 사람 두 명을 잡아갔어요.”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 어찌 보면, 그게 맞는 행위 같기도 한데, 그러나 가난한 자신의 나라에서 살기 어려워 위험을 무릅쓰고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막노동하던 그들의 가련한 삶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짓누른다.
대통령은 십만 달러를 들고 여행을 가신다는데, 십 달러라도 벌려고 아등바등하며 가족 먹여 살리려고 애쓰는 저 가난한 민초들은 과연 어찌 살아가야 할까? 하긴 지금은 살아보려고 발버둥조차 칠 수 없게 되었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꼭꼭 숨어들어 앉아 있어야 한다,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암, 괜찮아 지고 말고,”라는 한숨 섞인 말소리조차 속으로 삼켜야 한다.
게다가 2월인데도 불구하고 날이 화창하고 따스해서인지 골목마다, 거리마다 경찰의 눈초리들이 따갑게 반짝이고 있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인터넷이고 어디를 보아도 웃을 일이 없는 요즘, 일단, 히스패닉이 감시대상이고 보니 내가 히스패닉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마음일 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일도 겪을 수 있겠지만, 어찌하여 내가 태어난 조국이 한국이라는 것에 대해 이토록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일까?
숨어서 산다는 것은 피가 마르는 것보다 더한 괴로움일 것이다. 모든 걸 잊고 조국으로 가고 싶어도, 자신의 눈만 쳐다볼 식구들 보기 민망해 저렇게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만일 그들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답이 없다. 내 한 몸 희생하여 가족을 지킬 수만 있다면, 고통이 찾아오고 불안에 떨며 숨어다니면서까지 그것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전에 야드세일을 할 때 어떤 히스패닉 남자가 커다란 비닐 백에 옷을 가득 담으며 “우리나라에 보낼 건데, 거긴 가난한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렇게 보내 주면, 많은 아이가 옷을 입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 예뻐 옷을 더 넣어주며 “당신은 천사네요. 하느님께서 축복 많이 해 주실 거예요.”라고 하자 “당신이 옷을 더 많이 주어서 더 많이 보낸다고 할게요.”라며 씩~하고 웃고 있었다. 가난한 자신의 조국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힘들게 노동일 하여 번 돈으로 옷을 사던 사람, 비록 남이 입던 옷일지언정, 아이들에게 옷을 건넬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 웃음이 너무 예뻤는데, 이제 옷도 신발도 그리고 장난감도 싸게 살 수 있는 야드세일에 그들의 모습을 볼 수나 있으려나,
“어떤 히스패닉 사람 둘이 가는데 검은색 차가 다가와 그들을 붙잡아 갔어요.”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답답하다. 길 가다 이민국 직원에게 끌려간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추방이라는 아름답지 못한 일을 겪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 시민권 신청과 영주권 갱신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 “미국 시민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았는데, 트럼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민권을 따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는 90을 바라보는 노인, 트럼프의 말 한마디 때문에 아름다운 미국이 아름답지 못하게 변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캐나다에 사는 딸이 첫 아이를 출산하는데 너무 무서워 갈 수가 없어요.”라며 발을 동동 구르던 어머니도 결국 딸의 출산을 돕기 위해 떠나려던 것을 포기하고 시민권 신청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노란 개나리가 꽃을 활짝 피우고, 뱀 새끼가 길을 건너고, 곱게 핀 매화꽃이 하늘거리는 봄은 왔건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추운 엄동설한 속에 살고 있으니 언제쯤 우리 마음속에 따뜻한 봄볕이 찾아들려는가, 제발 따스한 봄은 오지 않더라도 마음의 평화라도 온다면 정말 좋으련만, 그게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으니 어쩌면 좋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