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시여!

드디어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가 밝았다고 무엇이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지만, ‘새해’라는 한 마디가 왠지 모르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 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우리는 늘 그렇게 희망이라는 것을 꿈꾸며 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젯밤에 비친 둥근 달과 오늘 아침 붉게 떠오른 저 해가 다를 것이 하나 없는데 그래도 새해 아침에 뜬 저 해를 보며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겪었던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지나간 세월에 묻어버리고 새로운 꿈을 꿀 것이고, 행복한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바라며 또 한 해를 맞이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것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다.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내 한 몸 뉠 방 한 칸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으리오만, 그것마저 해결할 수 없는 삶이란 슬픈 일이다. “죽은 아내가 그리울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어쩌나요. 이미 간 사람을, 아이들에게 모든 것 넘겨주고 나니 저 한 몸 뉠 곳이 없어 쉼터에 있습니다.”라는 노인은 너무 허무한 자신의 인생이 서러워 울고 싶은 심정인 것 같다. “자식이 없으세요?”라고 물으니 노인은 눈을 들어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식이 있은들, 무엇하리, 어버이를 모실 수 없는 자식, 그 자식 곁에 머물 수 없는 어버이, “쉼터에는 낮에 있을 수 없는 곳 아닌가요?”라고 물으니 “여름엔 나가야 해요. 그렇지만 겨울엔 종일 있어도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달력 하나 주고 싶었지만, 노인에겐 달력 한 장 걸어 둘 벽이 없었고, 무엇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그것을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후~하고 긴 한숨을 쉬는 노인의 등이 너무 무거워 작은 그 몸 하나가 곧 땅속으로 스며들 것 같았다.

 

 

이혼한 아내와 자식은 넘쳐나게 잘살고 있지만, 아버지는 갈 곳 없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한 끼의 밥 한 그릇을 청한다. 얼마나 허기가 졌는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그에게 “밥 한 그릇 더 드릴까요?”라고 하자 “있으시면 더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던 그는 지금 이 추운 엄동설한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기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사람들은 축하하며 기쁨을 나누고 새해가 왔다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며 미소 짓지만, 그들에게 있어 아기 예수님도, 새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님께서 방 한 칸 마련해 주지 않을 것이며 고픈 배를 채워줄 리 만무하다. 약값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누구에게 약 한 봉지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말한다. “이제 새해가 왔으니 좋은 일이 있겠지요.”라고 말하며 희망을 품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들을 쳐다보며 나도 그들과 함께 꿈 한 조각을 만들어 본다. 아픔은 치료될 수 있고, 배고픔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견디어야 하는 것은 배고픔과 고통이 아니라 홀로 겪어야 하는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낯선 이방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노숙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자식을 그리워해야 하는 그 외로움을 겪으며 추운 밤을 보낼 것이다.

 

 

올해는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올까? 이제 고통 없는 많은 사람이 웃으며 찾아왔으면 정말 좋으련만, 벌써 노숙자, 배고픈 사람, 갈 곳 없는 사람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마 기쁘고 행복한 꿈을 꾸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누군가가 내 팔을 잡는다. “저번에 보니까 쌀을 주신다고 했는데 찾아가도 될까요.”라며 미소짓는 젊은 여인, “쌀이요? 예 필요하시면 오세요.”라고 하자 “라면도 있나요?”라고 묻기에 “지금 라면은 없어요. 식구가 많으세요?”라고 묻자 “아이가 셋이에요. 일은 하고 있지만, 산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여인을 바라보며 “라면을 더 준비해야겠다.”라는 생각에 빠진다. 한 포의 쌀과 라면 한 상자, 생각해 보면 별로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련만,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어수선하니 민초들이 겪어야 하는 생활고가 말이 아니다. “시민권 준비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지금 열심히 모으고 있긴 한 데, 너무 답답해요.”라는 남자의 말속에 답답한 현실이 너무 야속스러운 듯하다. 어느 가수의 노랫소리에 ‘살자니 고생이오. 죽자니 청춘이라.’더니 모두 다 힘든 이민 생활에 지쳐버린 사람들,
바라건대 새해엔 다른 복이 아닌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복이 찾아와 준다면 얼마나 좋으리. 그래서 지쳐버린 이민 생활이 기쁨의 이민 생활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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