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요동을 친다. 무더위에 지쳤을 때 시원한 비가 내리니 이게 ‘웬 떡’인가 했는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비를 며칠 맞고 나니 이젠 “태양은 언제 뜨려나”라며 하늘을 쳐다본다. 사람의 속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이 쏟아지니 시원하게 퍼붓던 비가 다시 또 그리워진다.
바보같이 산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까워 눈물을 쏟아내던 여인은 “이젠 우울증이 지나 조울증이 생긴 것 같아요.”라고 하였다. 엄격한 아버지와 달리 너무 다정하고 착한 남편에게 반해 결혼했건만, 남편이 바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아 버린 인간이라는 것을 첫 아이를 낳은 후 알게 되었다. ‘나아지겠지, 아마 나아질 것이야,’ 라며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왔건만 이제 나이 들어 돌이켜 보니 나아진 것 하나 없이 자신의 한 조각 기대 마저 저버린 남편, “어떤 때는 몽둥이라도 있으면 잡아 패 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라며 한숨 쉬는 그녀의 얼굴에서 행복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절망과 후회의 모습만 보였다. “자식이 있으면 뭐해요. 속상한 말을 하면 오히려 위로 한마디는커녕 듣기 싫다고 신경질 부려서 말도 못 해요.”라는 여인은 “내가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았는지 나 자신 자체가 싫어요.”라고 하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그녀는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벌을 받아서 이렇게 사는 것 같아요.”라고 하였다.
주님은 고통을 주시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에겐 무한한 행복을 주신다. 그녀는 “교회 일 열심히 하고 주님 말씀 열심히 들으며 살았어요. 그러면 천당을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교회도 가기 싫고 말씀도 듣기 싫고 모든 게 다 귀찮아졌어요.”라며 “그냥 콱~하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우는 그녀의 눈물 속엔 행복이 찾아올 기회가 없는 듯하였다. 남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자식에 대해 미래를 가졌던 그 모든 것이 다 허물어진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다.
그녀가 가고 난 후, 내가 걸어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무엇을 후회하며 사는 것일까? 어떤 것이 나를 후회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러나 어차피 인생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찌 살아왔건, 지난날은 돌이킬 수 없는 아픈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운 청춘들로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추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가 늙어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았을 때는 지나간 그 시절은 허무한 추억뿐이리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옛날이 너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가슴엔 그저 안타까운 아픔과 허무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럴 리야 절대 없겠지만, 그녀가 죽음까지 생각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너나 나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세월일 뿐인데 나 혼자만 이렇게 후회하며 사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에 아무런 희망 없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 흘리는 여인의 모습이 언젠가는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나 혼자만 겪는 아픔은 아니었다. 알고 보면 모두가 지나온 세월이 너무 허무해 웃을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련이다. “이제 환갑을 맞고 보니 내가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힘 좋고 모든 것이 다 내 것인 양 살아왔는데 나이 먹고 보니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말하던 어느 남자는 “이제 좀 쉬려나 했더니 딸이 아이를 좀 봐 달라고 해서 요즘 애 봐주고 있어요.”라며 “손주 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긴 한데, 이렇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떠나버리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언제 이 세상을 떠나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한번 밖에 오는 것, 두 번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그렇게 귀하게 나에게 찾아든 세상이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우리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미련이 가득한 것은 아닐까? 상처만 남겨질 세상이라면 차라리 오지 않았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어찌할꼬! 여인의 등을 토닥이며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다들 그렇게 살아간답니다.”라고 하자 “글쎄요. 나만 이렇게 바보같이 사는 것 같아요.”라며 희미한 미소를 띤다. 그래 그렇게 웃으려무나, 그렇게 웃다 보면 허무하게 보낸 바보 같은 세월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니.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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