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 폭풍의 대지, 파타고니아 (2)

맑고 고운 시내가 흐르는 곳. 그 청정한 파타고니아 빙하수에 의식처럼 발을 담그고 피로한 발을 보듬습니다. 바람이 잠들어 인애로운 파타고니아의 햇살이 은총처럼 내리는 날에 쳐다보면 설산 내려다 보면 옥색 호수 천하 명당에서 황제와 황후가 부럽지 않은 오찬을 즐깁니다.

 

 

바람의 나라. 폭풍의 대지. 마젤란 해협을 따라 불어오는 태평양과 대서양의 바람 때문에 파타고니아의 일기는 참으로 변화가 극심합니다. 해양성 기후에다 눈과 비가 섞인 바람은 몸을 날려버릴듯이 불어 닥칩니다. 이 거칠고 황량한 바람의 대지에서 무엇하나 살아 남을 것이 있을까 의문스러워 집니다.
파타고니아의 기후는 고지대와 저지대마다 달라 바람도 다르다 합니다. 이토록 변화 무쌍한 자연과 풍경을 본 사람들은 파타고니아를 보지 않고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나 봅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광폭한 바람마저도 아름다운 파타고니아. 그 풍경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갑니다.

 

 

4일간의 여정 마지막 숙소인 그란데 파이네 산장으로 가는 길. 몇 십 파운드 무게의 배낭을 메고 어깨죽지에 통증이 내려도 이처럼 꽃길을 따라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걷는 파타고니아의 길도 당연 행복한 고행의 길이 아닐까?
요즘처럼 날씨만 짓궂게 변덕부리지 않으면 파타고니아는 계절과 시간 뿐만 아니라 이 바람과 꽃향기 그리고 풀내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내 걸음을 맞추어 볼만한 일입니다. 비록 혼자 걷는다 해도 종일 불어대는 바람은 어쩌면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함께 외로움을 나눌 친구가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람. 저도 외로워서 부는 것일테니까요. 그런 소소한 상념에 젖어 걷다보니 마침내 호숫가에 색색의 텐트들이 가을 단풍처럼 흩어진 중심에 소담스런 산장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음이 내려다 보입니다.
고갯마루에 올라 시선을 그 산장 위로 던지니 우리를 반기는 축하의 의식처럼 서쪽하늘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노을이 참으로 강렬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집을 떠나 생소한 길을 걸으면 구도의 철인까지는 아닐지라도 내 삶의 변화를 주기에는 충분하고도 행복한 고행의 여정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한번 씩 닥쳐오는 시련마저도 기쁠 수 있는 이 길에서 그 위에 흩어진 내 삶들을 주워 차곡차곡 정리하는 시간을 얻기에 마땅히 마음이 넉넉한 나그네가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