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한 인간일 뿐인데

그녀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였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택시기사,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세 명의 자녀는 대학을 졸업시키고 큰아들은 일찍 결혼하였고, 장녀인 그녀도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였다. 오래전 이민 온 시댁은 사업하여 큰 돈을 벌었고, 남편의 형과 누나는 변호사. 시동생은 육사 생도, 그녀의 남편은 회계사였다. 그녀는 결혼하는 그날부터 시댁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려야 했다. 택시 기사 아버지와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딸이 자신의 집에 시집왔다는 것이 단 하나의 이유였다. “그래도 참고 살았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죄지은 사람도 아닌데 엄마 아빠를 모욕하는 그 말이 정말 듣기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이젠 아이도 생겨 부부는 정말 행복하건만,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고 며느리는 오지 못하게 하였고, 툭하면 말도 없이 찾아와 살림 참견하는 것은 더 참을 수 없는 힘든 일이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어요?”라고 묻자 “그냥 흘려버리라고 하네요.”라며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저 열심히 일해 자녀들 잘 키운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친정 부모에게 할 수도 없는 일, 그저 애간장만 태우던 그녀는 앞으로 계속될 그런 상황을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 하였다. “남편이 좀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제가 아무리 속상하다고 해도 자기 부모 편만 들었지 제 사정은 조금도 이해하지 않는 남편도 이젠 지겨워요.”라는 그녀, 그래서 매일 싸움까지 하는 부부라고 하였다. “아이는 제가 키울 거예요. 설마 양육비는 주겠지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래도 혼자 아이 키우며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부부가 원해서 이혼하는 것이 아니고 시댁 때문에 이혼한다는 것이 참 서글프네요.”라고 대답하는 나를 본다.
“앞으로 이렇게 20년쯤 더 살면 그땐 나아질까요?”라고 말하며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 글쎄, 20년 후면 괜찮아질까? 그때쯤이면 그녀의 나이도 오십이 넘을 것이고, 아이도 몇 명 더 생겨 늙은 시부모의 잔소리도 없어질까?

 

 

우리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그래도 잘 견디며 살아보라.’라고 할 수밖에. 그녀가 자리를 뜨며 “요즘도 이런 시부모가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요. 다른 것은 넘어가겠는데, 자꾸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그런 집안에서 우리 집에 시집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죽이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라고 하였다.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남의 마음에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말은 더 삼가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나보다, 또 너보다 더 잘난 사람은 없다. 우리는 그저 미약하기 그지없는 인간 존재일 뿐이다. 아직 나이 어린 그녀가 받는 그 상처와 아픔은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어느 인간의 입에서 뱉어진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의 식구가 된 그녀에게 해 줄 말은 “우리 식구가 되어 주어 정말 고맙다.”가 아닐까? 잘한 것은 칭찬해 주고 못 한 것은 타이르며 한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아들이 이혼하면 시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들의 아픔 을 부모가 치유해 줄 수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과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는 그 아픔을 부모가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나보다 더 어렵고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사랑해서 결혼한 그 아내에게 그런 아픔을 준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보다 못한 누가 있다면 그를 위로해 주어야 하고 기쁨을 안겨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니던가, 아주 오래전, 어떤 여인이 “제가 보니까 남편이 장교인데 왜? 사병 부인들과 친하게 지내세요?”라며 “나는 지금까지 사병 부인들과 말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계급을 사귀지 않고 사람을 사귑니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남편은 군인 장교이기 때문에 절대 사병을 사귀지 않는다는 그 말은 오늘 우리를 찾아온 그녀의 시부모와 다를 것이 없었다. 계급장 떼고 나면 너나 나나 똑같은 인간일 뿐인데 무엇이 그들에게 그런 자만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헤어지는 아픔을 겪기보단 그녀가 아이와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www.ykcs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