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만 한 분야가 하나 있다. 아무리 국세청의 예산이 줄고 평균 세무감사를 받을 확률이 0.6퍼센트대로 낮아지더라도, 심지어 대통령 조차도 “똑똑하게” 절세했다고 자랑하는 현실일지라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직도 꼬박꼬박 매년 세금보고를 하고 있다. 심지어 대부분이 자진납세를 모범 시민의 의무인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이는 미국세청에서 실시한 2017년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88%에 해당하는 미국시민들이 세금 포탈을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 분류했다. 사실, 세금을 포탈했거나 하고있는 사람들이 국세청 설문조사에서 솔직한 의견을 고백할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금보고에 관한 미국인들의 놀라운 이상주의는 다른 곳에서도 종종 반영된다. 경제학자들이 자진납세율 (VCR, Voluntary Compliance Rate)이라고 불리는 수치가 있다. 미국은 거의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인 81 – 84 퍼센트를 유지한다. 미국인들의 자진납세율이 높다는데 사실 웃음이 나왔다. 매일 세금 포탈 사건을 다루다 보니 그 괴리에서 이질감을 느꼈나보다. 하여간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는 자진납세율 수치를 정기적으로 조사하지도 않거니와, 했다하면 미국의 수치보다 많이 뒤처진다. 유럽 강대국 중의 하나인 독일의 자진납세율은 겨우 68퍼센트 정도이다. 다른 유럽국가의 자진납세율은 더 형편없다.
최근 천 명 이상이 기소되는 약 23억 유로에 달하는 대형 세금포탈 스캔들을 겪은 이탈리아는 자진납세율이 62퍼센트 정도밖에 안된다. “고액의 세금을 피하는 것은 신이 준 권리”라고 했던 이탈리아의 대통령은 2013년 세금사기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이태리 국민들은 그리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더 심한 나라는 그리스이다. 이 나라의 자진납세율 수치를 조사하느라 경제학자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IMF 기금에서도 그리스 가구의 절반 이상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나라 전체가 세금포탈을 그냥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수영장 관련 세금의 예를 들어보자. 2008년 경제위기 후, 그리스 정부는 개인 수영장이 딸린 저택에게 특별소비세를 내게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아테네 근교의 한 고급주택가 지역에서는 총 324가구가 수영장 소유를 인정하고 특별소비세를 납부하기 시작했다. 수영장이 있음에도 특별소비세를 내지 않는 가구가 많을 것으로 추정만 하던 정부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이 속아왔는지 정작 알게 된 것은 구글 지도를 통해 위성 사진 확인이 가능해진 다음이었다. 이미 보고된 324개가 아니라 자그만치 16,974개의 수영장이 확인되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구글 위성 사진이 나오자 그리스인들은 물에 뜨는 타일이나 군용 위장덮개 등으로 수영장을 가리거나, 공중샷에 수영장 바닥이 잔디처럼 보이게 하는 페인트를 칠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자진납세율에 있어서 이탈리아, 그리스인으로부터 미국인을 차별화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득세를 월급에서 미리 떼가는 원천징수 시스템 때문인가? 이 시스템은 비록 미국이 시작했지만 유럽국가에서도 이제는 널리 쓰이고 있다. 아니면 미국의 높은 소득세율이 차별화에 한 몫했을 수도 있다. 혹은 미국세제개편으로, 더이상 속임수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크레딧을 받기 위해 부양가족의 소셜넘버를 필수항목으로 넣도록 하자 약 30억 달러의 세금을 더 징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작 경제학자들은 미국인들을 차별화하는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세금윤리’라고 한다. 이는 사회적 기준, 규범정신, 민주주의의 가치, 정부 각처의 투명한 예산집행,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시민의식 등이 한꺼번에 뭉뚱그려져서 생긴 집단 윤리의식으로 보고 있다. 집단의 국민들은 타인이 세금을 공정하게 내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본인의 세금보고서를 ‘마사지’할 가능성도 크다. 미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꾸준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볼 때, 아직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다는 것이 다만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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