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물

useless

나는 누구이기에 여러 사람을 만나며 늘 그들의 고민을 들어야 하고, 그들의 아픔을 들어야 하며. 그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새겨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내가 뭐 누구보다 아주 착하다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쏘~옥하고 나팔 불며 나타난 마음씨 좋은 천사도 아니건만, 늘 누군가의 아픈 사연을 귀로 들으며 사는 내 인생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어디 가면 가끔 욕하는 사람도 있던데요.”라는 말을 들을 때는 화가 나기보다 미소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 미련한 곰탱이 족속의 후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해라. 가끔 그런 욕도 들어야 배도 덜 고픈 것이란다.”라며 허허거리며 웃는 내 속도 이젠 능구렁이가 되어 가고 있다. “할아버지가 치매가 걸리셨는지 자꾸 경찰한테 연락이 오는데, 그 할아버지 자식을 좀 찾아주는 한인 단체가 있는지요?”라는 어느 분의 말씀을 들으며 “제가 알기로는 그런 단체는 없습니다.”라고 하자 “이곳엔 아주 많은 단체가 있는데 왜 그런 단체는 없을까요?”라고 묻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할아버지 아들은 목사라고 하는데 그 훌륭하신 목사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실종신고도 안 했는지 할아버지는 지금 어딘가에서 길을 헤매고 있건만, 어찌해야 좋을지 그분도 나도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날도 추워지는데 연세 드신 노인이 길을 헤매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탄핵이니 하야니 뭐니 해도 그것은 춥고 배고픈 이들에겐 허구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대통령을 갈아치운들 나을 것도 없는 한국,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한다 해도 역시 촛불시위는 여전하겠지?

한인회장이 새로 태어난다 해도 배고프고 추운 이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그들은 “그런 거 있으면 뭐하고 없으면 뭐합니까? 있으나 마나인데요”라는 시큰둥한 말만 해대고 있으니 세상살이 참으로 재미가 없다. “왜요? 그래도 거기 가면 밥 한 그릇은 있을 텐데요.”라고 하자, “아예 안 먹는 게 속 편합니다.”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그래도 우리 한인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뛰겠다는데 왜 있으나 마나가 되어버렸을까?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한인에게 믿음 줄 수 없는 한인회는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다 무용지물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고, 한인회는 한인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건만, 국민이 외면하는 대통령도, 한인이 외면하는 한인회도 그들에겐 소용없는 무용지물일 뿐이리라. 그래도 우리 한인을 위해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 바쳐 봉사하겠다는 그 마음은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싶은 이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사는 그들의 아픈 사연과 삶에 지친 애절한 우리 한인을 만나는 계기가 많다 보니 그 말씀 한마디에라도 희망을 걸고 싶은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래, 너도 뛰고 나도 뛰다 보면, 안 될 것도 없을 것이다. 그저 그들의 그 마음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니! 지금까지 그렇게 겪었으면서도 그런 말씀이 나오세요? 다 그게 그거고 다 그놈이 그놈인걸요.”라며 입맛을 쩍쩍 다시는 노인의 얼굴엔 더는 기댈 수 없다는 듯 내뿜는 한숨 소리가 마음을 저미게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그러한 불신을 안고 살아왔을까? “너무 힘들어서 좀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 하여 한 번 찾아갔었는데 ‘우리는 그런 일 안 합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데 어이가 없더라니까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슬며시 분노 같은 것이 스민다. 에이고, 그런 말을 듣는 나도 뭔 별로 변변치 않기는 마찬가지이니, 나에게 들으라는 말씀 같아 죄지은 사람마냥 붉게 물든 얼굴을 들어 올리기가 부끄럽기만 하다. “이젠 괜찮아요. 홈쇼핑도 열었으니 잘 되면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한마디 해 보지만, 그것이 잘 될지 안 될지 그걸 어찌 알겠는가. 태어나서 장사라곤 해 본 적 없는 내가 무슨 수로 잘 되기를 바란단 말인가. “그러세요. 그래서 우리같이 어려운 한인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하는데 할 말씀이 없어진다. 아유, 나도 모르겠다. 할 때까지 해 보는 수밖에,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겠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