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남편이 그녀 곁을 조심스럽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혹시라도 넘어질까, 혹여라도 발걸음을 잘못 디디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 남편은 어린아이도 아닌 아내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어딘가 불편한 듯, 작은 걸음을 떼고 있었다. “어디 불편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녀가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말은 없었다. 그러자 “아내가 반신불수에요. 그래서 잘 걷지 못합니다.”라고 남편이 대답하였다. 아직 젊은 나이건만, 어쩌다 반신불수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내는 남편의 대답을 들으며 작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오른팔을 쓸 수 없었고 다리도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말까지 잃어버려서 말도 잘 못 합니다.”라고 남편이 말을 한다. “아니! 어쩌다가요?”라고 묻자 “여섯 살 된 막내 아이를 하늘로 보내고 아내가 쓰러졌어요. 그런 후 아내는 절망으로 살다 이제 겨우 조금씩 걷는답니다.”라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먼저 떠나버린 아이를 생각하며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슬픈 마음이 아파 눈물짓고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아이, 아니 죽어서도 못 잊을 아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이, 이제 겨우 사십을 넘긴 엄마의 가슴에 커다란 아픔으로 남아있는 아이가 그리워 그녀는 울고 있었고 아빠는 아내의 그 모습이 안쓰러워 어깨를 토닥이며 “울지마, 그 아이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야.”라며 위로하고 있었지만, 아빠도 아마 가슴으로 떠나버린 아이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을 것이다.
이별은 아픔일 뿐이다. 더구나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은 죽을 때까지 뼈를 깎는 아이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과 눈물로 한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그녀가 남편 손을 잡고 길을 떠나고 있었다. 누가 그녀를 위로할 수 있을까? 누가 그녀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인가,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남편도 부모도 친구도 이웃도 그녀의 가슴에 든 검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맑은 미소를 띠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녀, 아마 오늘 밤도 그녀는 아이를 그리워하며 이불로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을 것이다.
“누가 좋은 차를 사면 저도 그 차를 타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누가 좋은 집을 사면 나도 그런 집에 살고 싶어 정말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살만하니 당뇨에 관절에 혈압까지 높아 약으로 살고 있으니 세상이 너무 허무합니다.”라고 말하던 남자는 “여행 한번 제대로 가 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늙고 보니 그런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라며 기가 막힌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랬다. 사람들은 별로 가치 없는 세상일에 너무 많은 미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떠나면 그만인 세상, 좋은 차, 좋은 집이 그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늘 하루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보단, 언제 죽을지도 모를 먼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야말로 뼈가 빠지도록 일만 하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 그 순간 우리는 이제 꽉 쥐었던 손목을 풀고 먼 세상으로 떠나버릴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떠나버리면 얼마나 좋으련만, 병으로
고통을 안고 죽을 때까지 호화스러운 집보단 냄새나는 병원에서 더 많은 날을 보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진수성찬 차려놓고 먹기보단, 쓴 약으로 하루살이를 해야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은 맛있게 골라 먹을 수 있지만, 약은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의사가 먹으라면 쓰든 달든 그저 입속에 털어 넣으면 된다. 아픈 다리를 끌며 “다리가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아무리 약을 먹어도 안 되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빨리 죽기나 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라며 혀를 끌끌 차던 노인도 “젊어서는 펄펄 날아다녔어요. 그런데 이제 자식 다 키워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나니 남은 게 병밖에 없어요.”라며 세상살이가 다 허무하다고 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저럴 때가 오겠지? 라는 생각에 잠긴다.
병으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도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어미의 아픈 마음보다 더 큰 아픔은 없을 것이다. 몸 안에 든 병은 고칠 수 있지만, 가슴에 든 아픔은 치료할 길이 없을 뿐이다. 세상 삶이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저 모래 위에 지어진 한 채의 오두막 같은 곳이다. 곧 무너질 오두막에 대한 미련은 버리는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런 오두막을 짓기 위한 삶보단,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 마음을 나누는 삶이 오히려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