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달막한 키, 날씬한 뒷모습에 비해 앞모습은 유난히 불쑥 내민 배 때문에 기우뚱 기울어질 것 같았다. 심장병 때문에 병원을 가야 하는 노인의 옆구리엔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서류를 끼고 기우뚱거리며 나오는 노인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멀리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노인이 차에 앉자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으로 퍼지는 노인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침, 따뜻한 봄 날씨를 핑계 삼아 더운 양 차창 문을 열었지만, 유난히 심한 특유의 냄새는 쉽게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아들놈은 매일 바쁘고, 딸년은 멀리 살고 마누라나 나는 이제 늙어 운전도 못하고 그렇게 삽니다.”라며 말하는 노인의 말이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탁한 냄새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 생활이 다 그렇지요, 자녀는 직장생활에 바빠서 자녀가 부모님의 일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도와드릴 수 없지요.”라고 대답하는데 노인이 콜록콜록 마른기침을 한다. “감기 드신 것 같은데요.”라고 하자 “젊어서 담배를 너무 피워서 그래요.”라며 심하게 기침을 한다. 물이 없어 물도 주지 못하고 겨우 휴지 한 장을 노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노인이 ‘팽~’하며 코를 풀고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차는 밀리고 있었고 둔탁한 냄새에 기침, 그리고 코까지 풀어내는 노인을 보니 어서 빨리 목적지에 다다르고 싶은 마음은 너그럽지 못한 바로 나의 심보였다.
그러나 어쩌랴 먼 훗날 나이 먹어 늙으면 나도 노인과 같은 행동을 할 줄 뻔히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도 알고 보면 별수 없는 나부랭이 같은 인간인 것을, 그렇게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도 노인은 계속 말을 잇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꼭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으니 이렇게 살 수밖에요. 마누라도 몸이 아프니 뭘 시키기도 그렇고 두 늙은이가 맨날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TV 보다가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뭐 별로 할 것도 없어요. 그래도 아침이면 새벽공기 마시며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래도 기운이 납니다.” 라며 흥얼거리듯 계속 말을 잇는 노인. “아드님과 딸은 오지 않으셔요?”라고 물으니 “자식도 우리 곁에 있을 때 자식이지, 다 커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나니 별 소용도 없어요. 그래도 딸년이 아들놈보다 더 전화를 많이 해요. 그리고 한 달에 $200을 보내주고 있어요. 저도 자식들하고 먹고사는 게 힘들 텐데 잊지 않고 용돈을 보내주니 아주 좋아요.”라시며 싱그럽게 껄껄 웃는다.
노인이 진찰받는 동안 잠깐 숨을 돌린다. 병원 대기실에 항상 그렇듯이 많은 환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몰라 묵주기도를 시작한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여인이 싱긋이 미소를 띠며 자신의 묵주를 보여준다. 별로 큰일은 아니었지만 같은 교우를 만난 기쁨에 잠시 인사를 나누고 그녀도 나도 묵주기도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노인의 진료가 끝났다. 다시 노인을 모시고 댁으로 가는 동안 노인은 한숨을 몇 번 쉬는가 싶더니 “나이 먹고 더구나 병까지 얻어 살아간다는 것이 한마디로 고통이라면 고통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도움을 주는 좋은 분이 있어 새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저희 두 늙은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 드릴 테니 도와주십시오.”라시는 노인, 노인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나 역시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노인이 행복하다고 말하니 나도 행복이었다. 노인이 감사하다니 나도 감사하였다. 이 순간 나를 찾아온 이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모두 이겨냈을 때 행복은 찾아들 것이다. 노인은 이제 마음 놓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맡길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비록 몸은 늙고 병은 들었지만, 자신의 고통을 마음으로 함께 해 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 우리는 바로 행복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차 안에 가득 배인 노인의 냄새가 향기로운 향으로 내 코로 들어오고 있었다. 냄새는 향기롭지 못했지만 내 마음은 향기로운 향수보다 더 짙은 꽃향기에 젖어있었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www.ykcs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