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빠져나오자 말자 오른쪽 자갈길로 들어서면 이내 트레일 헤드가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등산로임을 알리는 입간판과 곰을 주의하라는 그림 하나 세워뒀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차 하나 세워두지 않은 주차장에서 비옷과 장비들을 챙겨입고 후드를 쓰고 단단히 졸라매고 초반 숲길을 걷는데 행여 누구라도 마주친다는 희망이 있다면 덜 위축이 될텐데 지형이나 주변 환경이 꼭 곰이 출현할 것 같은 곳입니다.
누구를 기다려보나 하고 망설이다가 이 비에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하고 체념을 하고 홀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왕복 7km. 폴티지 고개에 올라 전후로 펼쳐지는 빙하들과 그 빙하가 녹아 이룬 옥색 호수를 감상하고 내리막 길의 그 호수까지 이르는 트인 리지를 걷는 그리 길지 않은 그러나 경치가 너무도 미려한 트레일 입니다.
2,3십분 줄행랑 치듯 달려 올라가면 저 숲길을 통과하고 목초지를 걷게 되어 시야가 확보되니 곰의 출현도 미리 알 수 있으리라 혼자 별 통밥을 재봅니다.
아무튼 열심히 자갈길을 치고 올라갑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전면에 산마루 뒤에 숨어 있던 Portage 빙하가 솟아오르고 뒤를 돌아보면 위티어 마을이 점점 작아지면서 건너편 산봉들 너머로 또 다른 빙하군들이 숨바꼭질 놀이를 들켜버린 것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은 어느새 수로가 되어 시내가 되어 흐릅니다. 한참을 오르니 오른쪽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모여들어 길을 물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혹 희망서린 기대지만 누가 뒤따라 올라 올수도 있고 또 내가 되돌아 내려 올 길이기에 잠시 수고를 해 물길을 길옆 도랑으로 돌려놓습니다 이중으로 미니 보를 만들어 주니 어느 정도 물길이 잡히고 도랑으로 콸콸콸 빗물이 흘러들어가니 뿌듯한 마음으로 가볍게 고갯마루를 넘습니다.
마루에 올라서니 앞에는 폴테지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져 있고 좌로는 만년설산이 우로는 장대한 폭포가 오늘따라 유달리 길게 낙하하고 뒤를 돌아보면 소담스런 해안 마을 위티어를 감싼 빙하들과 해협이 풍경화가 되어 보입니다.
한컷 한장면을 찍다가 이제는 숫제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있는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서 한폭에 담아봅니다. 또한 내 기억과 내 가슴에도 가득 채우면서 말입니다. 비는 여전히 소리 없이 뿌리지만 나만의 정상 등정 후 치루는 의식같은 세레모니를 오늘도 변합없이 거행합니다. 정상주 한잔 쭈욱 들이키고 한없이 넓어진 폐부로 한 개피의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것. 속세에서의 맛보다 비교할 수 없도록 더욱 감미롭습니다. 더욱 가벼워진 발길. 바람과 함께 이 낯선 자연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