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부터 먼저 내리는 가을은 알래스카에서도 마찬가지 이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곳은 하늘과 땅 모두 일시에 덮쳐버리는 듯. 삽시간에 산하를 진한 금색으로 물들여 버립니다. Matanuska 빙하를 바라볼수 있도록 큰 창을 내놓은 한 로지의 카페에 잠시 들러 따스함이 이제는 정겨워진 한종지의 커피를 마시며 쉬어 갑니다. 뒤 뜰에는 칼리부가 큰 왕관을 쓰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지금 당장에라도 우리에게 흘러 닥칠 것 같은 빙하가 목전에 있습니다.
가늘게 내리는 비에 하릴없이 젖고 있는 계곡의 산하는 찻잔의 온기와 체내로 흘러 들어간 한잔 술이 녹아서인지 아늑하고 평화스럽기만 합니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자유.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자연과 나와의 평온한 이 관계. 어둠은 소리없이 산그림자를 데리고 몰려옵니다. 인색한 불빛을 발하는 실내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산촌의 밤은 술과 함께 깊어갑니다.
매캐한 장작 태우는 내음에 잠을 깨는 새벽을 맞이하고 봇짐을 챙기는 나그네의 유랑은 다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앵커리지 북부인 디날리와 글랜 하이웨이 지역을 돌았으니 다시 앵커리지로 돌아와 재정비를 해서 남부 쪽인 Whittier와 Seward 그리고 fjord 국립공원을 돌아 행할 8자형의 여정이 이어집니다.
먼저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고 피시 마켙에도 들러 와일드 레드 살몬도 작은 놈으로 한마리 챙깁니다. 싱싱한 횟감으로 골라 오늘 저녁은 위티어라는 어촌 마을에서 피요르드 같은 해협을 바라보며 달과 함께 겸작을 하려 합니다. 날이 궂어 달도 별도 함께 하지 못한다면 푸른 달 만큼이나 환하게 밝은 빙하를 벗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려합니다.
앵커리지에서 이곳 까지는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만 달리는 해안 길 Seward highway는 자꾸만 수려한 풍경을 내어 놓기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버립니다.
해협에 가득찬 안개 너머로 설산 빙산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계곡에는 가을색이 깊게 드리워져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거벽 사이마다 폭포들이 쏟아지고 구름인지 빙하인지 분간키 힘든 햐얀 천들이 산허리를 휘감으며 다가왔다 뒤로 빠지는 풍경들. 나는 승용차가 아닌 구름을 타고 날으는 신선입니다.
100년의 알래스카 철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대한 Portage 터널을 지나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재삼 인식하게 됩니다.
차와 기차가 번갈아 왕래하는 이 굴길은 무려 수 킬로나 이어지는데 13불의 통행료를 내어야 할 만큼 단단한 암석을 쪼개면서 개통한 하나의 대단한 걸작품입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