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지 못할 아니 건너서는 아니될 강이었습니다. 알고도 찔러본 칼인데 머 낙담할 것도 없고 강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먼저 리버 루프 길을 걸으며 시동을 겁니다. 비옥한 강 주변에서 자란 관목들이 곱게 단풍으로 물들었고 천년 이끼들이 두터운 층을 이루어 바위 사이로 채워져 있습니다. 길을 벗어나면 바위로 이루어진 동토대가 산정으로 달리면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이미 빙점으로 내려간 기온 탓에 더 이상 빙하나 결빙되었던 지하수들이 녹지 않아 줄어든 수량에 차라리 조용히 흘러가는 시냇물이 정겹게 여겨집니다. 산양이나 마모트, 칼리부와의 조우를 기대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제는 오히려 가끔 나타난다는 곰의 출현을 제법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적막한 길입니다.
원점으로 돌아와 물 한모금 마시고 알파인 트레일을 오릅니다. Savage Rock 이라고 불려지는 기묘한 바위군을 지나며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먼저 간 다른 일행을 따라 잡으려 바쁘게 치고 올라갑니다. 말동무나 하면서 갈까하는 마음으로 그랬으나 이내 돌려 먹습니다.
저들에겐 난 그저 불청객일 수도 있고 또 앞으로도 이어질 오롯이 몰입해야 할 솔로 하이킹의 패턴에 길들여져야 하니까요. 이탈리아가 낳은 살아있는 전설의 세계적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을 되뇌이며 나를 채근합니다. “이 산을 넘는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일 뿐이다. 산은 오르는 매 순간이 처음처럼이어야 하고 과거의 기록은 무의미 할 뿐이다”
무념의 상태에서 비탈길을 크게 휘두르며 올라갑니다. 간혹 다람쥐 한 두마리가 멋적은 인사만 건네 올 뿐 한적한 길입니다. 정신줄 놓고 치고올라가다가 문득 지나온 길이 궁금하여 발길을 멈춰 뒤돌아 봅니다. 지금은 황금빛 가을의 물결로 채워진 거대한 분지 뒤에 장대한 디날리 산군이 펼쳐져 문득 지구가 아닌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풍경이 이어집니다.
황금색과 하얀색 그리고 그 색의 경계를 이루는 검푸른 바위산. 그 묘한 색의 조화가 낯설면서도 눈부십니다. 당연히 세계의 명산들이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을 지녔겠지만 오늘의 디날리 산군도 보기 드문 장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장탄식의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이 지구는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비밀들을 오지마다에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또 얼마나 걷고 또 걸어야 그 비밀을 조금이라도 캐볼수 있는 것일까? 실로 이 대자연 앞에서 무척이나 난망해지는 왜소함을 느낍니다. 그래도 이런 풍경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지나치는 낯선 산객에게라도 자랑삼아 말을 건네고 싶은데 오직 나혼자 뿐. 망연한 마음에 배낭을 내리고 바위에 걸터앉아 소주 한모금 병채로 들이키고 그 풍경속의 개체들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그러다 시선이 멈춘 곳. 유유히 흘러가는 하이얀 구름떼를 향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사랑하는 이들. 그들에게 마음의 엽서를 써서 그리움도 함께 실어 바람에 띄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