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트레킹. 아. 장엄한 캐나디언 로키 2편

shutterstock_95719522-326x245미주 트레킹. 아. 장엄한 캐나디언 로키 2.

세계 10대 비경, 루이스 호수와 비하이브 트레일

오늘은 세계 10대 비경 중의 하나인 루이스 호수를 찾는 날입니다. 밴프에서 30~40분 거리의 레이크 루이스는 3,264m의 빅토리아 빙산과 더불어 6개의 설봉들이 장엄하게 포진한 가운데 신비로운 청록색의 빛깔로 고즈넉하게 누워있는 호반입니다. 백인으로는 처음 루이스호수에 도착한 톰 윌슨이 에메랄드 호수라고 이름 붙였지만 훗날 빅토리아 여왕의 딸 루이스의 이름을 따 루이스 호수라고 개명하였는데 호수의 길이는 2.4 km이고 폭은 300m입니다. 빙하의 침식활동에 의해 생긴 넓은 웅덩이에 빙하가 녹은 물이 괴어서 만들어진 빙하호로, 빙하에 포함 된 자잘한 석회질의 퇴적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신비한 청록색의 물빛은 그저 신비할 따름입니다. 아마 이 에메랄드 색의 물빛이 있음으로 해서 10대 비경으로 손꼽힐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많은 로키의 호수 중에서도 대표적인 호수로 캐나디언 로키 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을 들고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루이스 교차로에 다다를 즈음에 차들이 정체현상을 빚고 있었는데 먼발치로 보니 야생동물의 출현으로 갓길에 차를 중첩해서 임시 주차하고 구경하는 바람에 생긴 현상이었습니다. 황소만한 몸집에 뿔이 화려한 엘크의 출현이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신기해하면서 차에서 내려 이 녀석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며 이른 아침 귀한 동물과 조우한 기쁨에 모두들 상기되어 오늘의 산행이 더욱 즐거울 것 같은 예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완벽한 색의 조화, 산과 호수와 하늘의 기막힌 구도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이 빼곡하게 차있었고 몇 바퀴를 돌다 겨우 얻어 걸린 공간에 차를 세우고 오늘의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말로만 듣던 그 아름다운 루이스 호수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말문들을 닫고 그 감흥에 취해있었습니다, 이에 걸맞은 유럽풍의 호텔 샤토가 함께 있으면서 그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고 코발트빛 호수에 점점이 떠있는 작은 배들이 원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구름에 가린 빅토리아산은 신비로울 만큼 그 자태를 감추고 있었고 눈 덮인 주변 산들이 곁에 있어 아름다운 한 폭의 명화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진정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어휘로도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 한 느낌을 애써 달래며 신음 같은 감탄만 뱉어냅니다. 완벽한 색의 조화, 산과 호수와 하늘의 기막힌 구도, 과연 비경중의 비경이었습니다.

오늘의 산행은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산들 중 산정에 아그네스 호수라는 작은 호수까지 오르고 이어서 비하이브 길로 들어 가장 빙하와 가까운 곳까지 이르는 가파른 길입니다. 이 길은 캐나디언 로키의 많은 하이킹 코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깊은 침엽수림 속으로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불편 없이 걸을 수 있고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나무 사이로 보이는 루이스호수가 여러 모양새로 변하는 풍광을 즐길 수 있어 각광을 받는 듯 했습니다. 호수와 호텔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뒤 호수 따라 난 산책로를 잠시 걷다가 본격적으로 경사로가 시작되며 본격 등정이 시작됩니다. 잘 닦여진 산행로 주변에는 아름드리 침엽수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으로 버티고 있고 이끼식물들이 바람에 흩날려 솔잎마다에 걸려 있어 더욱 태초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먹이를 받아먹는 재미가 버릇처럼 되어버린 작은 다람쥐들이 졸졸졸 우리 곁을 따르고 숲 그늘이 오히려 냉기를 느낄 만큼 시원하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간간이 트이는 시야에 들어오는 루이스 호수는 그때마다 다른 얼굴로 웃고 있었습니다. 조물주의 익살스런 작품으로 어쩌면 저리도 곱도록 물빛을 채색할 수 있었을까하고 감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청정한 로키의 호수들 그 물들

산행에 참여한 이들의 모습도 실로 다양합니다. 우리처럼 본격산행을 위한 채비들을 갖춘 이들도 있었으나 떡본 김에 제사지내는 식으로 시작한 이들도 있어 슬리퍼를 신고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가족들과 연인들과 친구들이 함께 한 이 동행길이 참으로 화목하고 즐거워보입니다. “인생 뭐있나? 이렇게 여행이나 하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다 가면 되지..” 삶을 초월한 듯한 철인의 넋두리가 흘러나옵니다. 득도한 이의 선문답처럼 그렇다는 맞장구가 이어집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경사로는 한담을 나누던 여유를 빼앗아 가버렸고 더욱 가까워진 빙벽이 장관을 이루어 지척에 나타났어도 그 고달픔에 곁눈만 힐끗거릴 뿐 참으로 고행의 길이었습니다. 이런 고달픔을 헤아려주는 산길은 잠시 쉬어가라고 미러라는 이름의 작은 호수를 선물로 내어주었습니다. 정말 거울처럼 투명하게 맑은 물위로 뒤 산 봉우리가 예쁘게 반사되어 비칩니다. 그냥 그대로 마셔도 될 만큼 청정한 락키의 호수들 그 물들.. 다시 길을 재촉해 정상을 향해 가는데 말을 탄 관광객 한 무리들과 마주쳤습니다. 따로난 전용 말길을 따라 올라왔는데 어느 구간은 같이 가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장사속도 좋지만 퍼질러 놓은 말의 배설물들이 늘어나면서 괜히 우리가 말 취급 당한 것 같은 불쾌감으로 애꿎게 말 잔등에 앉아 편하게 정상을 오르는 그들에게 불만의 표정을 던지고 맙니다. 진정한 등산의 의미와 땀의 대가를 모르는 처사라고.. 하나도 부러울 것도 없는데 말안장위의 그들은 거나하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정적만이 머무는 열반에 들어

드디어 아그네스 호수에 이르렀습니다. 설산준봉들을 지척에 두고 바라보는 아그네스 호수는 조용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아련하게 내려다보이는 루이스 호수는 아름다운 샤토와 함께 어우러져 기막힌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고 구름 걷힌 설봉에는 빙하가 나신을 드러낸 채 장엄하게 버티어 있습니다. 넘쳐흐르는 호수 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시원스레 떨어져 저 저 아래 놓여있는 미러 호수로 합류하나 보았습니다. 널빤지를 깔아 산책로로 만들어 놓은 호수 옆에는 소담스런 찻집이 통나무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산객들이 쉬어가는 곳. 160가지 캐나디언 로키의 허브를 섞어서 다린 차를 한잔씩 마시며 흥건하게 젖은 옷들을 잠시 말립니다. 써늘한 기온은 차라리 이 따스한 한 종지의 차가 제격이도록 호수주변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아그네스란 이름의 귀족 딸이 처음 발견하였다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나 후에 그전에 이미 평민이 다녀갔다는 말에 실망했는데 다행히 그 처녀의 이름도 공교롭게도 같은 아그네스라 개칭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별로 감동적이지 않은 얘기를 안주삼아 가져간 포도주를 한잔씩 기울이며 정상등정의 노고를 나눕니다. 평화와 안식의 풍요로움이 산장에 가득하고 이따금 호수를 건너 불어오는 바람은 깃털을 달고 날아가는 듯한 쾌적함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발을 담그기에는 차마 미안한 해맑은 호수에 그래도 담그고 세족을 시켜줍니다.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온몸으로 펴져가는 맛사지 효과에 나른한 오후의 졸음이 다가옵니다. 순간 새들의 노래소리도 바람소리도 낙하하는 물소리도 멈추고 정적만이 머무는 열반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