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KING IN TOP OF THE WORLD, 선샤인 메도우 트레일
몇 시간의 비행으로 계절은 이미 바뀌어 캐나다 로키는 더 이상 여름이 아니었습니다 . 캘거리에서 한 시간 반정도 거리인 반프에 이르니 가을 날씨처럼 청명하고 쾌청한 바람이 만년설산을 넘어 오고 쪽빛 하늘이 푸르게 드리우고 찢겨진 구름은 그 날카로운 얼음산에 걸려 머물고 있었습니다. 반프 국립공원 지역에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산행코스를 개발하여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 군데 명소가 있는데 Sunshine Meadow, 6 Glacier, Bow Summit, Ohara Lake 트레일이 그것입니다. 모두 정상부분에 이르러 산행을 할 수 있도록 셔틀버스를 운행하여 산객들을 실어 나르는데 5,6백 미터를 오르내리며 설산의 장관과 호수, 고산평원의 야생화와 동물들을 접하게 했습니다. 2천 미터는 족히 되는 고산에 만들어진 굽이굽이 비탈길을 해묵은 스쿨버스는 힘겹게 기어가고 30분이 더 결려 산행로가 시작되는 트레일 해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장시간의 산행 중에 가장 걸림돌인 생리현상을 미리미리 해결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 산등성이에 숨겨져 있을 보물을 찾아가듯 바쁜 걸음으로 비탈진 산자락을 기어오릅니다. 성급한 이들은 이미 산행을 마감하고 돌아오는지 간혹 반가운 인사로 우리 곁을 지납니다. 열네명의 우리 대원들은 길게 행렬을 갖추어 오르는데 일마일은 족히 되어 보이는 기나긴 비탈길이 가슴이 답답하도록 숨이 차오르게 하여 잠시들 발길을 멈추고 심호흡을 통해 폐속 깊숙이 록키의 청정 산소를 공급하며 호흡을 고르고 함께 노고를 달래어 줍니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는 들판을 지나면서 지척에 놓인 높은 산들에는 흰 눈들이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채 쌓여있습니다. 사계절이 그대로 공존하는 기이한 자연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조물주에게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잊을 수 없는 영원한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트를 눌러댑니다.
기막힌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숨가픈 오르막을 한참을 오르니 저만치 아름다운 호수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기막힌 풍경이었습니다. 유리처럼 투명한 호수 물에는 눈높이로 다가온 것 같은 설산과 기이한 암벽들이 투영되면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호수 중간에는 작은 섬이 있어 기둥만 남은 고사목과 노송들이 안정된 구도로 위치하고 있어 그 풍경화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참가한 우리 모두의 전체 사진을 찍기 위해 곁에 있는 동양인에게 부탁하니 일본 여인으로 한국어를 제법 구사하고 있었고 그 연유를 물어보니 한류를 타고 드라마를 보면서 한글을 깨우쳤다 합니다. 모두들 신기해서 한마디씩 건네며 이것저것 심문 수준의 질문들을 해대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수다스러워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널 부러진 보석을 캐기 위해 진군하는데 두 번째 호수가 나타나고 시리도록 너무도 맑은 물속에 제법 씨알 굵은 물고기들이 유영하면서 한가롭게 놀고 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생명체이지만 이런 질긴 생명력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두고 떠나기가 너무 아쉬워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의 광경을 즐거이 감상합니다. 참으로 포근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니 여기가 바로 천국일세
호수를 지나 앙증맞은 실개천을 넘어 고갯마루 하나를 넘어가니 전방에 펼쳐지는 락키의 준봉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가슴 저 언저리에서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 같은 감흥에 눈물이 핑 돌고 말았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그 벅찬 기쁨에 심호흡을 하면서 저리도 아름다운 설산들에 빨려드는데 옆에서는 요단강을 건너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극한 표현까지 나옵니다. 깊이 침몰한 계곡에는 침엽수들이 가지런하게 도열해있고 휘하고 돌아가는 강물은 산자락의 만류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데 설봉의 거산들이 흰옷 입고 버티고 있는 장관은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답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검푸른 하늘이 그 깊이를 가늠치 못하게 하고 이에 대비한 구름은 더욱 순백의 순결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린 갈대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마지막 세 번째 호수를 돌아 다시 시작되는 비탈길을 오르다 잠시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하며 뒤돌아보니 우리들 곁으로 더욱 더 많이 모여든 준봉들이 또 다른 풍광을 선사합니다. 나름 지구의 지붕 위를 걷는 이 산행에 이 보다 더 훌륭한 가든파티는 없으니 준비해간 음식으로 귀한 성찬의 시간을 즐깁니다. 주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모진 생명력으로 버티어 있고 부족한 영양 탓인지 성장이 더디어 나지막하게 퍼져있는 낙엽송들, 그사이를 열심히 오가는 작은 비버들과 다람쥐들이 우리의 성찬식을 장식하는 좋은 들러리로 서주고 있었습니다. 비록 베이글 하나에 감귤 하나씩인 걸인의 찬이지만 자연이 베풀어준 천연의 분위기는 황후의 성찬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호수에 비친 피라미드형의 거대 빙산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아주 기막힌 연회를 이끄는 빼어난 배경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닮아 나이와 세월을 초월한…
지나치는 산객들의 부러운 눈길을 느긋하게 만끽하는 성찬을 마치고 최종 등반 지점인 전망대를 다시 오르는데 힘든 대원들은 남아 기다려도 좋다 해도 기어코 모두 따라 나섭니다. 각오들을 새롭게 하고 휜 허리로 반 마장을 힘겹게 올라보니 넓게 퍼져 있는 설원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한여름에 만나는 눈이라 더욱 반가워 환갑을 바라보는 동갑들이 눈덩이를 뭉쳐 눈싸움을 하며 설원을 뛰어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대단한 자연은 우리 인간을 천진난만한 어린이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나이와 세월을 초월한… 부담 없는 산정 목초지를 걸으며 양안에 펼쳐져 있는 온갖 풀과 꽃들의 군무를 보면서 하산하는 길은 경쾌하기만 합니다. 더욱이 귀한 산양 떼들이 출몰하여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니 우리는 너무 축복받은 산행을 한 하루였습니다. 고산지대 꼭대기에서만 군서한다는 산양 떼들의 배웅을 받으며 요단강 건너 천국에서 환희와 기쁨으로 한 산행을 마감하고 떠나는 우리의 머리위에는 변덕스런 고산 날씨로 세우가 조용히 이슬처럼 쌓이고 있었습니다. 지척에 머물던 이름 모를 준봉들도 서서히 멀어지는 아쉬움이 자꾸만 우리로 하여금 뒤돌아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