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 보고 싶은 하루

생일이 더 이상 즐거운 날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나이를 먹는 것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았다. 어렸을때는 빨리 나이를 먹어서 대학을 가고, 담배도 피우고, 연애도 하고, 술도 마셔보고,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스톱”하고 정지 시키고 싶다. 침상에 누워서 공상을 하다가 문뜩,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하루를 준다면 언제로 돌아갈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조금의 주저도 없이 나는 2000년 봄으로 갈 것이다. 2000년 봄에는 나에게 큰 승진이 있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난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차를 구입한 것도 아니다. 그해 봄에는 딸이 Pre-School을 다녔고, 아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누나를 유리문에서 기다리던 때였다. 그 모습은 나의 50인생에서 가장 돌아가보고 싶은 하루가 된다. 아이들의 맑은 눈과 미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주택거래를 진행하다보면 정말로 스트레스 받는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셀러로 인해서, 때로는 바이어로 인해서, 가끔은 상대 에이전트로 인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고비를 넘어서 클로징으로 가면 조금의 희열을 느낀다. “해냈다”라는 성취욕. 이 성취욕은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주택융자를 단 6시간만에 성사시킨 모게지 전문인이 되었을때도 느꼈고, 화학회사 근무시 회사에서 가장 큰 거래처를 개설했을때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이 성공의 어느날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하루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가 임종의 순간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얼마나 성취했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인생의 시작도 끝도 성취욕은 자리가 없다. 그런데도 인생의 중간에는 성취욕이 우리를 지배한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일류회사에 다니고, 최고학군에 살고, 고급주택을 소유하고, 명품으로 치장하고…

 

주택거래는 이해관계가 없는 두 객체가 주택이라는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이다. 거래액수가 크다보니, 양쪽이 신경이 날카롭고 감정적으로 변할수도 있다. 비지니스는 이성적인 행위이기에 감성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또한 한번 감정적으로 변한 거래는 이성적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거래의 성사에 커미션이 지급되는 부동산 에이전트를 중립적인 객체로 보기도 쉽지 않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셀러도, 바이어도, 에이전트도, 이 거래는 우리에게 ‘돌아가고 싶은 하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는 시간이 한정적인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하루’도 아닌 주택거래에 이렇게 목숨걸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땐 그랬었지’로 지날 일들에, 오늘은 잠도 못들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 우리의 나약함에 다시 허탈해진다.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 가만히 자성해 본다. 그래, 내가 할 일은 나의 손님들이 하루라도 더 많은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만들 수 있도록, 주택거래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임을. 그래서 다시 자신에게 물어본다, “당신의 돌아가고 싶은 하루는 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