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적부터 ‘우리’가 ‘나’ 보다 우선이라고 배웠다. 나하나를 희생하더라도, 더 큰 우리를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배웠다. 80년대 민주항쟁도 나 하나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구한다는 사명감으로 겁없이 뛰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는 던져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서, 자신은 희생하고 전우를 구한 용감한 군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나 TV에서는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을 기합을 주고 있는데, 멋있게 나서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 맡는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항상 나를 희생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민주항쟁한다고 운동학생으로 구속되어서 제적되고, 덕분에 공무원 아버지는 실직당하고, 형은 군대에서 전방으로 끌려가고, 어머니는 스트레스에 쓰러지고, 다시 우여곡절 끝에 복학하면 바뀐 운동권 지도부에 실망느끼고. 차라리 공부나 할껄하고 후회한다.
모두들 기합받고 있는데 총대를 메고, “제가 그랬습니다. 급우들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저 하나만 처벌해 주십시요”하면, 영화에서는 선생님이 감동해서 용서해주는데, 현실은 나 하나만 퇴학을 당한다. 고등학교 중퇴는 생산업의 단순직에도 취직이 안되고, 부모님은 마음 고생이 심해서 몸의 병도 얻게 된다. 차리리 멋있는 척 안하고 가만히 있을걸 하고 후회한다.
현실은 우리가 어릴적부터 배운 희생정신에 위배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잘 되어야 우리가 잘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이야기들이 그 예이다. 집안 환경이 어려워서 학업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장사를 돕기로 결정한 딸은 평생 어머니를 도와서 사는 삶을 살것이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작은 행복을 줄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대를 이어서 그 장사를 할것이다. 그녀는 결국 희생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것이다. 반면, 아무리 집안이 어려워도 원하는 공부를 하고, 원하는 미래를 현실화 시키는 딸은 한 동안은 어머니를 힘들게 만들지 모르지만, 결국 본인도 행복해지고 어머니도 행복하게 될 것이다. 성공한 딸을 결코 어머니가 하던 장사를 이어받지 않을 것이다.
한인 비지니스도 3%의 한인사회보다도 97%의 주류사회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했으면 좋겠다. 한국음식이 일본 스시나 중국요리집보다 미국사회에 더 보급화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술이 프랑스 포도주보다 더 위상을 높고, 한국산 의류가 이태리 명품보다 더 귀했으면 좋겠다. 다 같이 평범하게 살기 보다는, 한 두명이라도 아주 잘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선거철이었던 지난 년말에, 공화당도 민주당도 모두 한인들의 표와 선거자금을 원했다. 이럴때 워싱턴 디씨에 성공한 한인부자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미국 최고의 거부에 한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인의 위상이 오르고, 모두들 한인들을 더 더욱 존중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미국 상원에서도, 하원에서도 모두 자발적으로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고 성명서를 발표할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 같이 작은 나라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내에서 아주 잘 살기 때문이다. 미국이 멕시코 같이 큰 나라를 우습게 보는 이유는, 많은 멕시칸들이 미국내에서 가난하게 살기 때문이다.
마이클 리
엡스틴엔 피어스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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