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삶

우리에게 가장 친한 벗은 과연 누구일까? 마음과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의 가장 친한 벗일까? 문득 ‘벗’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가장 친한 벗은 ‘죽음’이었다. 친할 수 없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벗은 아니지만, 늘 내 곁에 함께 붙어 다니는 친구가 나의 벗이었다.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싫다고 밀어내도 떠나지 않는 녀석, 언제 어디서나 내가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먹고 마시는 어느 순간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그 녀석이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

사람은 상처받으면 떠나가고 싫으면 돌아가지만, 죽음이라는 친구는 아무리 고달프고 짜증나고 싫다고 해도 나의 옆을 지켜주는 벗임을 알았을 때 죽음이란 녀석이 어쩐지 싫다기보단 오히려 고마운 나의 친구라는 생각에 정겨운 친구로 여겨진다. 언제 나로부터 떠나갈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보기 싫다고 밀어내도 늘 내 곁에 남아 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친구, 아마 태어날 때부터 저세상으로 갈 때까지 내 곁에 늘 함께 붙어 있을 친구 이름은 바로 ‘죽음’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이라는 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냥 싫다고 밀어내기보단, 영원한 나의 벗으로 받아준다면 오히려 삭막한 세상의 인간 친구보다는 가장 친근한 나의 벗이 될 것이다.

죽음은 무섭다. 이 세상에 별난 인간 빼고 죽음을 사랑하고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젠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할 죽음이라는 친구가 있는 것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죽으면 천사 같은 친구를 나에게 주고 그는 다시 다른 친구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새로운 천사 친구를 만날 때까지 그와 함께 머물 것이다. 죽지 않겠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몸부림쳐 봐야 우리는 별수 없이 언젠간 죽을 것이다.

떠나갈 그 순간까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친구와 함께 다정한 말을 나누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세상, 그래도 죽음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어 우리는 외롭지 않다.
언제 나를 데려 갈지 모르겠지만, 죽으면 아무것도 나에게 남아있을 것이 없는 세상에 너무 많은 미련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다 보니 가끔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그래서 우리가 사는 오늘 하루가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기쁘게 그리고 보람된 하루를 사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욕심이 없을 리 없겠지만, 그 욕심도 모두 다 내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내일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뛰고 또 뛰며 그렇게 살아간다. 욕심이라는 친구를 선택하기보단 죽음이라는 친구를 선택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죽음을 생각하긴 싫은데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욕심은 선택이지만, 죽음은 선택이 없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왜 오늘 죽음을 이야기할까? 가까운 지인이 생각지도 않은 죽음을 맞이한 것을 본 후, 나는 죽음이라는 이름의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눈을 뜨고 숨을 쉬고 먹고 마시고 걷고 생각하는 이 순간은 나에게 온 덤으로 찾아든 인생일 뿐이다. 숨 쉴 수 있는 오늘 하루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어느 영화 제목처럼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 귀중하게 허락된 오늘 하루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축복으로 맞이할 수 있는 평화가 늘 함께할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운 것이 아닌 아름다움이다. 이제 우리는 차 세대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맡겨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서러워 마라. 덤으로 사는 오늘을 기뻐하라, 그리고 감사하자. 그리고 ‘죽음’이라는 이름의 친구와 친해지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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