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기원

1850년대의 뉴욕 술집을 들어서면 눈에 낯익은 모습들이 보였을 것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탁자와 의자들, 빼곡히 쌓인 술병들, 구석에 피아노등. 그러나 계산대 뒤를 돌아보면 예상외의 물건들이 관심을 끌 것이다. 8000여 종류의 각기 다른 지폐와 커다란 책자가 그것이다. 연방정부는 금화와 은화는 주조하고 있었으나, 일반인들에게 거래로 통화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지폐는 발행하지 않고 있었다. 8000여개의 지폐들은 지역 은행들과 주 은행들이 발행한 은행어음형 지폐었다. 가령, Boston 은행이 10달러 지폐를 발행하고, 손님은 그 지폐를 Boston 은행에 가져오면, 은행은 10달러 상당의 금화나 은화로 바꿔줘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Boston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는 오로지 Boston 은행에서만 받아줬다. 가까운 뉴욕 은행에 가면, Boston 은행권은 환전이 거부될 수도 있고, 액면가치의 일부만 인정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Boston 은행의 10달러가 보스턴에서는 $10 이지만, 뉴욕에서는 $8의 가치만 있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서 뉴욕의 술집등을 비롯한 모든 비지니스들은 각 은행의 지폐가치를 지침하는 지폐가치 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 전 지역의 모든 은행지폐들의 가치평가 책자는 각 지역마다 매달 발간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시마다 지폐발행 은행들과의 거리가 각각 다르고, 많은 은행들이 파산했기에 늘 새 정보가 필요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듯이, 연방정부는 남북전쟁을 시작으로 연방지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군수물자의 매매를 위해서 결국 연방정부에서 지폐를 발행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연방정부는 이 연방지폐를 일시적 전쟁군수물자 거래용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전쟁 후에 다시 은행지폐들이 성황할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소비자들과 사업자들이 연방지폐의 편리함에 은행지폐들을 밀어낸 것이다.

 

 

요즘 주택가격을 보면 은행 지폐들을 떠 올리게 한다. 감정사가 감정한 감정가격, 인터넷의 싸이트들이 제공하는 예상가격, 셀러가 생각하는 리스팅 가격, 바이어가 사려는 오퍼가격… 각자 자신들의 가격형성 소신과 이유는 뚜렷하다. 문제는 1850년대의 지폐들 처럼 그 가치가 서로들에게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부동산 에이전트의 업무중에 가장 힘들고, 가장 능력이 필요되는 것이 주택가치의 타당성을 다른 상대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바이어에게는 왜 이 주택이 오퍼보다 가치가 있는지를, 셀러에게는 냉정한 평가가치에 대한 분석을, 감정사들에게도 주변 거래내역들을 통한 거래 시세등을…
불행히도 1850년대의 은행지폐가치 책자와는 달리, 주택가치에 대한 책자가 없는 관계로 모든 사람들이 쉽게 합의하는 방법은 없다. 혹시라도 오랫동안 매매되지 않고 있는 주택이 있다면, 대부분의 경우, 이 가치의 편견들에 대한 의견수렴이 아직 성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