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이 벽에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아니 우리를 조용히 바라본다. 가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떠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 곧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내가 떠난다는 것을 기억하거라.”라고 말해 주는 것일까? 어찌 보면 새침한 듯, 어찌 보면 아련한 듯, 벽에 붙어 애잔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저 녀석은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이제 저 머나먼 곳으로 영영 떠날 이 한 세월이 아쉬워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도 많고 탈도 많다지만, 올해는 너무 많은 사건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헤집어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월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아픔이라기보단 절망이었고, 슬픔이라기보단 가슴 치며 통곡해야 할 일이었다. 기막힌 한 역사가 이루어진 한 해였다. 그것도 남의 것이 아닌 바로 나의 것이었고 우리의 것이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한숨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한 채, 기막힌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세월이 가면 잊힐 거야,’ ‘언젠가는 잊을 것이야.’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이 사건을 우리가 겪게 될 줄이야. 어느 누가 알 수 있었으리. 그러나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라는 녀석이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제 제 할 일 다 했다고 함께 추억 속으로 가버리려고 떡~하니 무게 잡고 떠나려고 한다. 그래 가거라, 빨리 가거라, 어서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이 세상에 다시 오지 말아라.
이 세상에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큰 기쁨과 커다란 행복 그리고 즐거움이 가득한 날들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웃고 산 세월보다 늘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아온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바락바락 살아왔지만, 결국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더 올라갈 곳도 더 내려갈 곳도 없는 적막강산 같은 우리의 삶, 슬픈 사람은 옛날을 그리워하고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인생살이인 것 같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이민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 내가 왜 이리되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라는 여인의 눈가엔 젖은 눈물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지금까지 내 집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다 이 나이에 집도 없이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라며 한숨짓는 그녀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힘겨움이 묻어나온다. 고작 살아야 백 년을 살기 힘든 인생이건만 바둥거리며 살아온 몇십 년의 삶이 행복이 아닌 슬픔과 고통으로 머물러 버린 그녀의 모습에 내줄 수 있는 것은 겨우 보이지 않는 한 조각도 안 되는 얄팍한 미소밖에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서글픔으로 밀려든다. 하루를 보내며 우리는 몇 번이나 배가 터지도록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웃었으며 그 미소 속에 우리는 얼마나 큰 행복을 담았던가. 그러나 허허 대며 웃지는 못하더라도 가슴으로 밀려오는 한 움큼의 슬픔을 뱉어낼 수만 있었어도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아니라 앉으나 서나 걱정만 싸여가는 그들의 마음이 슬프기 짝이 없다.
“나이는 들었어도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어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도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이 없다. “어쩌다, 어찌하다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그렇다고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정말 답이 없어요.”라는 그녀의 등만 어루만져 주는 내 손이 부끄럽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세월, 다시 갈 수만 있다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수 있을 것도 같건만. 그게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다시 또 대책 없이 떠나보내야만 하는 올 한 해도 그저 무심하기만 하다. “내년이라고 뭐가 또 달라지겠어요? 달라질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수밖에 뭐가 더 있겠어요.”라는 그녀는 ‘이 세상살이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라고 했다.
신부님께서 “예수님은 이천 년 전부터 오셨고 작년에도 오셨고 올해에도 오시고 또 내년에도 오실 텐데 뭐 그리 새로울 게 있겠는지요?”라고 말씀하셨다. 하긴 매년 오시는 아기 예수님이 오셨다가 가시고 또 오셨다가 가신들 우리 삶이 뭐 그리 달라질게. 무에 있을까마는, 그래도 험난한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해 주실 예수님이라도 자꾸 찾아오시니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라도 되지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듣다 보니 오래전 한국의 어떤 식당 벽에 쓰여 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어제도 오셨더니 오늘도 오셨구려, 내일도 오신다면 얼마나 즐거우리.” 힘들었던 올해의 모든 어려움을 예수님께서 다시 또 다 짊어지고 가시고 정말 아픔 없는 새해를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