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 갈 줄은 몰랐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소년, 청년, 장년을 넘어서 중년을 지나고 있다. 더구나, 하루 하루 급한 불을 끄는 일에 신경을 쓰다보니, 과연 어디로 인생이라는 여정이 흘러 왔는지도 모르고 있다. 어릴적의 거대한 꿈의 설계는 흔적도 없고, 눈앞의 문제해결에만 정신을 쏫는 삶으로 점철하다보니… 설계와는 완전히 다른 건물이 서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서 건물 앞으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설계했는데, 정원대신 작은 텃밭에 고추, 상추, 토마토를 심었고, 건물앞까지 진입로는 아직도 비포장 도로로 질척거리고 있다. 설계와는 많이 다른 주택에 놀라서, 다시 시작하려해도… 시간이 너무 없다.
야심찬 소년이 세상에 외쳤다. “신이시여, 저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요.” 그리고 그 소년이 청년으로 되자, 그는 다시 외쳤다. “신이시여, 저에게 나라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요” 시간이 더 흘러 그 청년이 성년이 되자 그는 “신이시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요” 라고 말했다.
시간은 차갑게 무심하게 흘러서, 어느덧 노인이 되어 버린 소년은 “신이시여… 너무 늦지 않았다면… 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속삭였다.
나 자신이 변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눈 앞의 황금에 눈이 멀고, 발 앞의 불을 소화하는데 전념하는, 그런 한계에서 벗어난 그 무엇을 추구하고 싶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인생의 마감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가장 큰 제국을 정복한 칭기스칸의 마지막 욕구가 영생을 사는 것이었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제도 영생을 위해서 수은중독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생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최근에는 냉동기술, 유전자 클론등을 통해서라도 이 생명의 한계를 넘어보려는 시도가 있지만 평범한 세인들은 감히 생각도 못하는 비용과 위험성이 동반된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서 영생의 안식을 위안 받기도 한다.
감히 영생의 문제 영역에는 접근하지 못하기에, 오늘의 삶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무조건 시작해보고 실패와 좌절을 겪고, 다시 도전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다. 그러기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마저도 나에게 가치와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들만 하고 싶은 것이다. 노숙자들을 돕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돈이 필요해서 우선 돈을 버는 간접적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숙자들을 도울 수 있는 직접적 도전을 해야하는 것이다. 많은 사업가들이 성공한 뒤에 자선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비지니스와 복지를 동시에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사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에게 타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가 되어버린 나에게는, 나를 변하게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