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여성 환자가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며 필자를 찾아왔다. 환자는 약 1-2년 전부터 건망증이 시작되어 환자의 주치의로 부터 치매 진단을 받고 오래 전 부터 치료약을 복용하여 왔다고 하였다. 병원에 함께 방문한 딸에 의하자면 환자의 단기 기억력이 최근 들어 더욱 눈에 띄게 떨어졌으며, 이로 인해 몇 달 전 부터는 더 이상 환자 스스로 각종 세금 고지서를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고 하였다. 환자를 진료하는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환자의 증상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걸음걸이의 이상이었다. 환자의 딸에 의하자면 공교롭게 환자의 건망증 발생 당시, 즉 약 1-2년 전부터 이 보행 장애의 증상도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걷는데 더욱 불편하게 되어 더이상 제대로 걸음걸이를 정상적으로 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환자의 보호자는 또한 환자가 일어선다든가 할 경우엔 매우 자주 어지럽다고 호소한다고 하였으며, 이 또한 환자의 걸음걸이를 매우 불안하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또한 주목할 만한 사실로 환자가 가진 가족력이었다. 환자의 어머니는 알쯔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과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으로 진단 받았다고 하였으며,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생전에 환시와 환청 증상을 자주 호소하였다고 하였다. 환자는 은퇴한 방사선 테크니션이었으며, 현재는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다고 하였다. 환자의 경우 음주력이나 흡연력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환자의 인지기능 (cognitive function) 검사는 주목할만 하였는데, 환자의 간이정신상태검사 (mini-mental status examination, MMSE)는 30점 만점에 27점으로 정상이었으나, 함께 시행된 레이-오스테리에쓰 검사(Rey-Osterrieth Complex Figure Test)에서는 매우 심한 시공간 지각력(visuo-spatial ability)의 장애를 보였다. 또한 신경학적 검사에서는 파킨슨병을 시사하는 소견인 가벼운 경직 상태와 손 떨림 증상이 오른쪽에서 감지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진찰 소견으로는 환자에게 안구 운동을 시켜 보았을 때 매우 특이하게도 환자는 머리 위로 눈을 치켜 뜨는 동작을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계속하여 여러가지 신경학적인 검사들을 통하여 환자의 상태는 치매를 일으킬 수 있는 치매증후군의 하나인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multiple systemic atrophy)’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독자들 가운데서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이라는 병명을 들어본 적이 있는 독자는 매우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퇴행성 뇌질환은 최근의 한 연구에서 밝혔듯이 파킨슨병으로 진단된 사람들 가운데 약 10%에 있어서는 후에 파킨슨병이 아닌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이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최근 발생 빈도가 증가 추세에 있는 신경 질환이다.
두가지 형태의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파킨슨병 증상과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을 보이는 형태 (MSA-P, MSA-parkinsonian)와 다른 한 가지는 주로 소뇌 및 운동 신경계의 이상을 보이는 경우 (MSA-C, MSA-cerebellar)다. 2007년 요시다(Yoshida M.)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노화 과정에서 신경세포에 알파 시누클레인(alpha-synuclein)이라는 이상 단백질이 축적이 되어서 신경세포를 빨리 죽게 함으로써 이와 같은 퇴행성 신경계 질환이 발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화 과정에서 누구나가 다 겪게 되는 기억력의 감소 및 운동 능력의 소실은 물론 정상적인 노화과정의 일부일 경우가 대다수 이겠지만, 만일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과 같은 병적인 퇴행성 신경계 질환의 초기 증상이라면 이에 대한 조기의 정확한 진단만이 최선의 치료와 관리를 보장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