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히 차려입은 옷, 단정한 머리, 선한 눈동자, 작달막한 키, 그가 자리에 앉으며 “잘살아 보려고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지 않고 열심히 살았어요,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두 아이 결혼하면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내의 행동이 이상했어요,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지요. 하지만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어요, 하! 어쩌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던 그의 눈에 굵디굵은 눈물이 방울 되어 흐른다.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모두 다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했을 때 그가 절레절레 머리를 가로저으며, “제가 웬만하면 왜 이러겠습니까? 그러나 확실해요.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단정 짓듯이 말하는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 7시에 일이 끝나서 집에 오면 8시 정도 돼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9시 반에 들어오더니 차츰차츰 10시에도 들어오고, 어떨 때는 11시에도 들어와서 ‘왜 늦었냐’고 물으면, 일이 늦게 끝났다고 하기도 하고, 친구들 만났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 친구가 호텔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는 거예요”라고 하더니 허공에 대고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내는 무어라고 하던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다른 남자는 없대요, 대신 자유롭게 홀로 살고 싶다면서 이혼을 하자니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라며 그가 희미한 슬픈 미소를 짓는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부부의 관계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 그야말로 행복 끝, 불행은 시작된다.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남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혼할 수 있느냐? 고 하니까 ‘아이들 다 컸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이제는 자기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하네요”라며 다시 또 긴 한숨을 내 뿜는다. 그러더니 “다, 제 잘못이지요, 제가 못나서 이렇게 되었지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라는 그의 얼굴에 절망스러움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잘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열심히 일하다 보니 가정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남자는 그것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이 나이에 이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나저나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것이 걱정이라는 남자의 머리 위에 흰 머리카락마저 애처롭게 보인다.
행복은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 물론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오랜 세월 함께 한 가족을 배신하면서까지 그녀가 선택한 자유와 행복은 어떤 것일까? 아주 오래전, 어느 여인은 처음 보는 내 앞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심한 욕설과 폭력, 온갖 횡포를 일삼는 남편과는 더는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그 여인은,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참고 또 참았지만, 이제는 바람까지 피우는 남편을 보고 그동안 힘겹게 지켜왔던 가정을 더는 지탱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혼하려고 변호사를 찾았지만, 돈도 없는 데다, 이곳의 법은 6개월 동안 별거를 해야만 이혼을 할 수 있다는데, 그 주제에 집은 나가지 않겠다고 하니 내가 나갈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코가 막히도록 소리를 내어 울고 있었다. 그녀 역시 좀 더 잘살아 보려고 머나먼 이국땅을 밟았을 때의 희망과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위자료나 양육비를 줄 남편도 아니니 이 여인을 어찌하면 좋을까?
부부가 헤어지는 것이야 또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이 입어야 할 그 상처는 누가 치료해 줄 것인가, 어찌 되었든 ‘離婚’이라는 그 이름 앞에서 두 사람 모두 자식들에게 있어 죄인일 뿐이다. 처음 만나 사랑을 불태울 때의 그 뜨겁던 사랑의 열정이야 식었겠지만, 그동안 쌓아 온 부부의 정, 가족의 정으로 살아야 할 부부애, 그러나 서로의 가슴에 커다란 멍울을 안기면서까지 깨버려야 하는 가정, 과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떠나는 그 사람이야 웃으며 떠날 수 있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그 아픔은 누가 쓰다듬고 보듬어 준단 말인가? 한평생 ‘너’ 하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온 수많은 세월을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이며, 무엇으로 대신 갚아 줄 수 있을까?. 이제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살며 가정을 지켜 준 서로에게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그 나이에 그들은 이혼이라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아픈 눈물을 흘리게 한, 믿고 의지하고 사랑했던 반쪽들, 이제 그들은 원수가 되어 서로가 가야 할 제 갈 길을 재촉하며 대체 ‘네가 뭔데 날 울리는가’라며 서럽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