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억울할것 같아서

대도시에 살고 있다는 단점중에 하나는 교통체증이다. 이건 어디를 가나, 어느 시간대에 가나 항상 교통체증이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한번은 심야영화를 보고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데, 495고속도로가 꽉꽉 막혀 있었다. 심야에 도로공사를 하는 관계로 차선을 일시적으로 모두 막아 놓은 것이었다. 15분이면 가는 거리를 무려 45분이나 지체해야 했다.
가끔 슈퍼마켓의 계산대 앞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가 있곤한다. 손님들의 줄은 길게 늘어서 있는데, 계산대 직원은 다른 동료와 잡담을 하느라고 자신의 계산대에 붙어 있지도 않는다. 한참뒤에 계산대에 나타나서는 계산대 정리에 또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런 행동을 할때는 손님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대형마트에서는 물건을 찾을수가 없어서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할때, 멀리서 직원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사라진다. 손님이 직원들과 눈이 마주치면, 도와달라는 요청임을 인식하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일일이 손님들에게 대답하기가 귀찮아서 숨는 것이다.

나는 93년까지 거의 10년동안 담배를 피웠다. 대학 신입생때 콜록거리면서 배운 담배가 좋아서 피웠다기 보다는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혹시라도 나중에 담배로 인해서 불치의 병을 얻는다면 얼마나 억울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불치의 병에 걸리면서까지 담배를 피울 가치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그냥 끊기로 했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불혹이 되어서는 담배뿐만 아니라 나를 스트레스 받게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에 남은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이다. 사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심야에 도로공사로 차선을 차단한 공사장 인부도, 계산대 옆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슈퍼의 직원도, 손님의 질문이 귀찮아서 도망가는 직원들도 자신들은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 즐거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나는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부동산 매매에서 협상의 진행을 보면 가끔은 한쪽이 너무 흥분하는 것을 목격한다. 사실 셀러도 바이어도 자신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서 까지 상대를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사람들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다. 상대는 기분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기분이 엉망이라면 억울하지 않은가? 자신의 기분을 좋게하는 음악도 들어보고, 좋아하는 책도 잃어보고, 산책도 해보고… 그리고 다시 협상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나쁜 기분에서는 극단적인 말과 행동이 나오기 쉽고, 극단적인 말은 더 극단적인 반응을 초래한다. 그래봤자 결국은 주택매매일 뿐이다. 이것이 과연 나의 인생을 만드는 지금 이 순간보다 중요할리는 없지 않은가? 나 혼자 화를 내고 씩씩 거리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고귀하지 않을까? 나는 너무 억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자체를 거부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스트레스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