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임도 떠나가는데

오래전, 아내를 하느님 나라로 떠나보내고 남의 집 지하 셋방에서 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노인, 생활비는 사회보장금으로 받는 $690이 전부였고, 월세를 내고 난 백여 달러가 그의 한 달 생활비이다. 이미 70이 된 그는 돈을 벌 수 있는 나이도 이미 지난 그에게 나이 어린 여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불법체류자였다. 그는 살아생전 좋은 일 한번 하는 셈 치고 그녀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행복한 날을 보내며 그렇게 살던 어느 날 그녀에게 영주권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영주권을 받은 며칠이 지난 후, 그녀는 이혼을 요구했다. 영주권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그와 결혼한 그녀는 이제 영주권을 받고 나니 이제 더는 그와 함께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우리 이혼해요. 난 더는 당신과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야말로 보따리 싸서 그다음 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어렵지만, 그녀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영주권 받자마자 이혼하겠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요,”라며 웃는다. 여자는 영주권을 받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였고 그래서 영주권을 받은 후 떠나가 버린 것이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억울해요. 그녀가 시민권을 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하였다. “그냥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와서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하자 그는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요.”라며 “이 세상에 믿을 놈 정말 하나도 없어요.”라고 하였다.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 용서란 힘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떠나버린 그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억울하다 하여도 그는 그 상처를 영원히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 나이 들어 70을 바라보는 그는 누구 말마따나 ‘좋은 일 하려다 억울함을 당한 꼴’이 되었다. “분해요. 정말 분해서 못 견디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남과 남이 만나 한 몸을 만들어 가정을 꾸리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 그러나 목적이 다르면 상처만 남을 수 있는 것 역시 부부일 것이다. 노인과 그 여자는 사랑으로 만나 부부의 끈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깊은 상처만 남을 뿐이다. 속상하고 분하고 억울해도 이미 지나간 일, 가슴에 맺힌 한은 홀로 풀어버려야만 할 일이다. 낡은 차에 쌀과 라면을 실어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새해니까 슬픈 일 다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생각하면서 사세요.”라고 하자 “그렇게 마음먹어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요.”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를 떠나보낸 후, 가만히 생각하니 만일 내가 저런 일을 당했어도 그렇게 쉽게 다 잊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나도 저 노인처럼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삶에 있어 기쁨보다 더 많은 것이 슬픈 일이다. 슬픔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다. 누군가가 “친구들 많지요?”라고 하였다. 나는 친구가 없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나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해 줄 사람은 없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위로의 말은 잠시일 뿐이지 정말 나를 위해 함께 울어줄 사람은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사람은 ‘삶을 냉정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 누구에게 기대기보다는 나 홀로 견디며 사는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람과 만나 수다를 떨기보단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이 나에겐 소중한 삶일 뿐이다.

노인이 겪은 일은 오직 노인만이 겪은 일이 아니다. 그녀에게 건 기대가 컸기에 상처를 받았을 때 견딜 힘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불법체류자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 이유다. 그 사람의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간 모두 다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내 임도 갈 건데 내 임도 아닌 남이 무슨 이유로 나에게 남아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일까? 억울해하지 마라, 모든 게 다 내 탓이리라, 분하다고 가슴을 쥐어뜯지 마라. 그래 봐야 내 속만 아플 것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살아가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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