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에 캐나다로 처음으로 이주했을때, 미리 이주해온 지인에게 몇가지 조언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내용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쇼킹해서, 그동안 지탱해온 나의 사고관에 인지 시키기 위해 힘이들었던것 같다. ‘남자와 우산을 같이 쓰지 마라’ 비에 흠뻑 젓더라도, 우산을 같이 쓰면 ‘게이’라는 오해를 살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우산을 같이 안쓰거나, 안쓰려고 하면 인간성이 비열한 사람으로 인식되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다른 뜻으로 인식될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의 행동에 무관심해라’였다. 그 당시 영연방에서는 홍콩의 중국귀환을 앞두고, 홍콩의 자본흡수를 위해 투자이민을 개방했다. 이로인해 홍콩 출신 고등학생이 최고급 승용차로 등하교하는 것이 종종 목격되었다. 백인 선생님은 15년된 소형차를 몰고 주차하고, 그 옆에 BMW 750은 새로온 홍콩학생이 주차한다. 그래도 누구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상대방의 성공은 상대방의 가치기준이고 나의 성공은 나의 가치기준이다. 나의 성공기준이 ‘가족과 기쁘게 사는것’이라면, 가족과 기쁘게 사는 동안은 성공한 인생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나의 성공기준이 타인의 영향을 받으면 복잡해지고 불행해 질수 있다는것이다.
성공을 ‘남들에게 존경 받고 인정 받는 것’에 목표를 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매일 실적보고서를 연구해서 오늘은 누가 1등이고 자신이 몇등을 했나 분석했다. 1등을 하기위해서는 누가 도움을 줄수있고, 누가 해가 될수있나를 연구 했다. 결국 1등을 유지 했을때는 행복했었는데, 1등에서 떨어졌을때는 불만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1등을 유지하는 날보다는 1등이 아닌 날이 더 많은 인생에서 그는 불만족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을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는 1등을 했다고 더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친구가 1등을 했을때도, 1등이 아니었을때도, 회사동료들은 늘 같은 정도 만큼 이 친구를 존경했다는 것이다.
타인을 의식하면 타인을 위한 사는 인생이 된다. 데레사 수녀나 슈바이처 박사처럼, 타인들을 위해서 사는데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타인들을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불행히도 우리는 어릴적부터 1등을 강요 당했다. 내가 10등을 해도 행복하게 살수 있는 사회가 아니고, 무한경쟁의 사회였기에 오직 1등만이 사회적 안정이 보장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1등이 아니면 부모들은 ‘너희 학교 1등은 누구니?’ ‘그 부모는 좋겠다’, ‘너는 왜 1등 못하는데’ 그래서 엄친아라는 단어도 생긴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는 1등주의가 필요없는 미국사회에 산다. 꼭 1등을 안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고 얼마든지 행복할수 있는 사회이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순간부터 행복해질수 있는 그런 사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룰루랄라 행복을 챙겨서 출근 준비를 한다. 실적이 저조하다고 비지니스 파트너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다가오면, ‘It’s going to be Alright, Buddy’ 하고 찡끗해 준다.
마이틀 리
엡스틴엔 피어스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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