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머물러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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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한숨과 함께 눈물을 쏟는다. 이민국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던 그녀가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네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병마로 그녀의 남편은 지금 뇌암 말기 판정을 받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갔을 때 그녀의 남편은 이미 고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 겨우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려는 그는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만큼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어쩌나, 어쩌나, 우리 남편 불쌍해서 어쩌나!”라며 안타까운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 “빨리 알았어도 고칠 수 있었을 텐데”라며 토해내는 아내의 목메어 울부짖는 소리라도 그가 들어준다면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른 채 가쁜 숨만 몰아쉬는 남편의 가슴을 토닥이는 애잔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후회하며 가슴을 치며 울어도 가야 할 사람은 가야 하는지 그녀의 남편은 숨을 몰아쉰 다음 머나먼 곳을 향해 떠나고 있었다.

전에 어떤 분이 “주님은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들 것을 알려주는데, 무지한 인간들은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그것을 그냥 그렇게 지나쳐 버린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내게 찾아들 병마를 미리 알려주시지만, 무지한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병마가 찾아들기 전에 주님께선 그 병마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시지만, 무지한 인간들이 그것을 무심히 지나쳐 버린다. 나는 그녀의 남편을 바라보면서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내 아내를 살펴주시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부부를 병실에 남겨두고 나오며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만일 나에게 무서운 병마가 찾아든다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처음엔 무서워 한참을 울겠지?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주님께 매달리기도 하겠지? 그러나 결국 나를 내어 주신 주님께서 거두어 가는 생명을 아무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나 주님께서 손짓하는 곳으로 줄레줄레 따라갈 것이다. 그래 그래야 할 거야, 떠나는 사람이야 아무 미련 없이 떠나갈 수 있겠지만, 남아있는 가족은 이별의 아픔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살아가야 할 거야, 장례식장에 갔을 때. 목사님께서 “슬퍼하지 마십시오, 지금 OOO 씨는 천당에서 주님과 함께 기쁨에 넘쳐 있을 겁니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OOO 씨를 보내 드리십시오”라고 했지만, 그분은 과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두고, 늙으신 노모를 두고 그렇게 기쁘게 떠나갔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헤어짐은 슬픈 것이다. 더구나 영영 떠나가는 가족을 어떻게 웃으며 기쁘게 보내 줄 수 있을까? 그녀가 “이렇게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준다면 원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고통 속에 살아있는 것보단 남편을 빨리 데려가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라는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왜 그 목사님 설교 말씀이 떠올랐을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던가. 이 세상에 빈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마칠 때는 역시 빈손으로 가야 하듯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 죽음에 계급이 없듯이 삶에도 계급은 없는 것, 우리 모두 빈손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해 갈 것이다.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 오늘 하루 행복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니었든가, 오래 산다고 반짝반짝 빛나는 영광스러운 계급장을 어깨 위에 달아줄 것도 아닌 인생, 어느덧 세월은 흘러 머리는 하얀 백발로 변해 버린 우리들의 마음은 그저 공허뿐이 아니던가.

가끔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던가”라는 생각을 하면 그저 인생무상의 회한만이 가슴에 잔잔히 머물 뿐이다. 그러나 반짝거리는 계급장은 내 어깨 위에 없어도 졸부로 살다 간들, 번쩍이는 계급장을 달고 살다 간들 죽으면 그저 남느니 이름 석 자가 전부일 뿐이다. 하긴 “어머님 존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으니 “생각이 안 나는데요.”라고 했던 어떤 분이 생각난다. 그러니 이젠 이름 석 자도 남아있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면 어떻고 또 안 그러면 어떠하리, 죽으면 그만일 텐데. 목사님 말씀처럼, 죽은 그 인생은 기쁨에 충만하여 저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있을 것이거늘, 그러나 갑자기 찾아든 병마로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가야 하는 그도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손을 쓰다듬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나 혼자 떠나 미안하오.”라고 말하며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저 세상이 더없이 좋은 천국이라고 하여도 그래도 헤어지는 것은 슬프다. 정말 슬프고 슬픈 아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