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손

그는 몹시 괴로운 듯 “약이 다 떨어졌는데 이젠 약 사 먹을 돈도 없고 일거리도 없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이렇게 전화했습니다.”라며 힘겨운 듯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무슨 약을 드시는데요?”라고 물으니 “혈압약은 그렇다 치고 당뇨약이 다 떨어졌어요.”라고 하였다. “그럼, 지금 당뇨약 값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라고 묻자 “그렇기도 하지만,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라고 한다. 당뇨약과 혈압약은 하루도 거르면 안 된다. 그런 환자가 지금 약도 없고 돈도 없어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내쉰다. 일단, 소셜국을 찾아갈 것을 알려주었지만, 왠지 모르게 푹 젖어있는 그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가슴에 머문다. 다행히 시민권자라 소셜국에서 메디케어를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의 삶이 무척 어려움에 부닥친 상태인 것 같다. 비상약이라면 챙겨줄 수 있겠지만, 꾸준히 의사의 처방을 받고 챙겨 먹어야 하는 그의 약값을 대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커다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주님께선 잠깐 쉴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으신다. 또 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을 내 귀로 듣게 하시고 내 가슴에 그를 머물게 하시며 그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라며 나의 손을 이끄신다.
소셜국에서 그에게 메디케어라도 빨리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고 사는 게 너무 힘드네요.”라고 말하던 지쳐버린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머물러 있다.
힘없는 그들이 손을 내민다. 그리고 힘없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힘없이 내미는 나약한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것도 나에게 주신 은총이오, 그들에게 단 한 조각의 희망과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 믿기에 우리는 기꺼이 그들의 손을 잡는다.

 

 

은퇴 연금으로 사는 부부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생활하기에 너무 빠듯했다. 게다가 메디케이드를 신청할 수 없다는 어느 복지센터의 말을 듣고 부부는 절망에 빠져버렸다. “왜 우리는 메디케이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요.”라며 한숨 쉬던 부부에게 메디케이드와 후드스탬프를 받게 해 주었을 때 “너무 좋아요. 메디케이드도 받고 후드스탬프도 받게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라며 웃음짓던 노 부부, 그것이 바로 행복이었다. “좋으시겠어요. 그래 후드스탬프는 얼마나 나와요?”라고 묻자 “$135이나 받아요. 그게 어디에요.”라며 기뻐하던 노 부부의 모습이 너무 예뻐보인다. 우리의 손은 보잘것 없이 작고 초라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일 뿐이다.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70대 중반의 노인은 “은퇴 연금으로 살자니 너무 힘듭니다. 게다가 93세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사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라는 노인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건사하기 힘든 상황인데 노모가 약간의 치매까지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직 영주권자라 정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처지, 하는 수 없이 보건소 신청서를 작성해 주니 그는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것이라도 있으면 병원 치료는 받을 수 있겠지요?”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노인이 사무실을 나가더니 “저 쌀은 뭐예요? 파시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필요하세요? 어려우신 분께 드리려고 준비해 놓은 것인데 필요하시면 한 포 드릴게요.”라고 하자 “여기서 이렇게 쌀까지 받아가다니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한 포의 쌀을 번쩍 들려고 하지만 비뚤어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쌀 한 포를 차에 실어주니 노인이 “많진 않지만 이것이라도 받으세요.”라며 돈 $10을 주신다. “괜찮습니다. 어머니 맛있는 것 사다 드리세요.”라고 하자 “아닙니다. 적어서 그러세요?”라는 말에 얼른 받는다. 적어서 안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을 돈이 아니기에 받지 않는 것일 뿐,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노인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밖에서 그를 배웅한다. 이것이 삶이다. 서로 보듬어 주고 서로 의지하며 그리고 서로 정을 나누는 것이 행복한 삶일진대, 그것을 실천할 수 없을 때 너무 큰 상처가 마음에 쌓인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 그리고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함께 가잖니?”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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