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렁거리며 떠난 여인

한국에 가야 해요. 남편이 한국에 있거든요. 그런데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요. 그리고 비행기 표를 사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요.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여인은 어딘가 모르게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글쎄요. 별안간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하니 좀 그렇네요. 저희는 그렇게 주어야 할 돈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럼 저는 어떡해요? 당장 가야 하는데, 딸이 있어요. 딸을 찾으러 왔는데 딸이 어디에 사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럼 딸을 찾아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런 건 경찰에 알리세요. 저희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딸 전화번호를 알아요. 그렇지만 아무리 전화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요.”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녀가 딸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전화 한번 해 주세요.”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딱한 노릇이겠지만, 아무리 보아도 엄마의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전화번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자 어느 미국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실례합니다. 혹시 그곳에 000사람 있나요?”라고 묻자 남자가 화를 내며 “여긴 그런 사람 없다고 하는데 왜 자꾸 전화하는 거요?”라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나를 소개한 후 사정 이야기를 하자 그가 “아! 그렇군요. 그렇지만 어떤 여자가 자꾸 전화해서 한국 여자를 찾는데 여긴 한국 여자 없어요.”라고 하였다.

 

 

전화를 끊고 그녀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하자 “그럴 리가 없어요. 그 남자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우리 딸 전화번호가 맞아요. 그러니 다시 한번 전화해 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가방을 뒤지더니 무슨 서류 뭉치를 내놓으며 “제가 지금 한국에 가야 해요. 보세요. 여기 이 주소가 우리 남편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빨리 가야 하는데 여권도 없고 비행기 표도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렇게 사정할게요.”라며 두 손을 마주 비비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기가 막힌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녀는 떠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럼, 남편에게 돈을 보내라고 하세요.”라고 하자 “남편이 알면 큰일 나요. 제가 미국 올 때 돈을 주었는데 제가 그만 돈을 다 잃어버렸어요.”라고 하였다. 홍두깨 같은 말을 하는 여인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쩌다 미국까지 와서 저렇게 되었을까? 잘살아 보겠다고 미국에 왔던 것은 아니었든가. 횡설수설하는 여인을 달래고 또 달래서 돌려보냈지만, 마음이 스산하다. 정말 그녀는 딸을 찾으러 온 것일까? 정말 그녀는 돈을 다 잃어버린 것일까? 여권도 없고 돈도 없이 그녀는 어떻게 한국을 간다는 것일까?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다 겪기도 하지만, 가끔 돈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사연을 듣다 보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여인처럼 엉뚱한 사람을 만나기 일쑤이다. 누구나 사연이 있기는 마찬가지, 나도 너도 모두 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맞는데 정말 이럴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이 안 된다. 그 여인은 떠나가며 “누가 그러는 데 여기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라고 하였다. “도움은 드리지만, 돈에 관한 것은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그럼 어디 가야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여인의 사연을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녀의 가족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남편이 있다면 남편만이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뿐이다. 남편이 또는 딸이 도움을 줄 수 없는 처지라면 그 누구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한쪽 눈으로 일하는 젊은 여인이 영주권 갱신을 하러 왔다. “일을 하고 있지만, 돈벌이가 넉넉하지 못해요. 방세 내고 나면 아이들 둘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였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여인이 너무 애처로워 영주권 갱신 대신 시민권 신청하는데 도움을 준 적은 있었지만, 지금 찾아온 여인은 그녀와 사정이 달랐다. 믿어야 하는 데 그녀의 말은 믿을 수가 없었다. 또한, 진실이라 해도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구시렁거리며 어딘가로 떠나갔지만, 그녀는 내일은 어디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인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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