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

 

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늘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한다. 어느덧 추석이 다가오니 누군가가 “추석이면 뭐해요? 미국에 살다 보니 명절 잊어버리고 산 지 오래되었어요.”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설날이라고 따끈한 떡국 한 그릇 제대로 끓여 먹은 기억이 없고, 추석이라고 송편 한 조각 입에 넣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벌써 추석이네요. 고향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추석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살다니, 죽기 전에 부모님 산소 한번 가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 명절이 되면 마음이 답답하네요.”라고 말하는 노인은 부모님, 형제 그리고 추석에 대한 아련한 기억으로 먼 하늘을 바라본다.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이 고달프다는 뜻일 것이다. 혹여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신다면 아무리 삶이 고달프더라도 풍요한 추석이면 한 번쯤 고향을 가 볼 만도 하겠지만, 부모가 없는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니었다. “혹시 추석에 우리끼리라도 송편 사다 먹으면 어떨까요?”라는 말을 들으며 이웃과 함께 송편 한 개 나누고 싶은 그들의 말이 찡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송편이요?” 별안간 나온 말에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러세요. 송편이라도 나누어 먹으면 좀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하자 “그럼 그날 막걸리 한 병 가져오면 안 될까요?”라고 한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사무실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으니까요.”라는 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래도 추석인데 막걸리 한 잔쯤은 괜찮지 않을까요?”라며 웃는다. “사무실에서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마시는 것은 안 됩니다.”라고 하자 “그럼 할 수 없지요. 뭐”라고 한다.

 

 

홀로 사는 세상 삶이 어렵다는 것은 홀로 겪어야 하는 고독이었다. 더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한 명절, 가족도 없이 홀로 맞이한 추석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 잔의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민 생활에 있어 허락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두철미한 철칙이기에 그것까지 허락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없다.
그분의 한 마디가 대화의 장을 열었다. 추석 명절에 가장 힘든 것은 성묘인가 보다. 막힌 도로를 뚫고 조상의 묘를 찾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래도 벌초하고 난 후,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던 그때가 좋았어요.”라고 한다. 고향을 떠나 이민 생활에 지쳐버린 이방인들, “돈 착실하게 모아 고향 한 번 다녀오세요.”라고 하자 “말이야 쉽지요. 그렇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라며 한숨 내쉬는 노인의 입에서 진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어떤 사람은 “영주권 기다리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갈 수 없었을 때 아예 영주권을 포기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장례식에 갈 수 없었던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라며 얼굴을 붉힌다.

 

 

사연 없는 사람이 왜 없을까? 갈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규제 때문에 갈 수 없었고, 갈 수 있는 처지임에도 생업이 너무 고달파 갈 수 없었다. 오늘 어쩌다 추석 이야기가 나오고 추석 이야기가 어느덧 그들의 고달팠던 옛 추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가고 싶어도 부모님은 이미 먼 세상으로 떠나버려 “가야 할 이유가 별로 없네요.”라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삶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추석날 송편 먹으며 나누어야 할 이야기를 다 나누었으니 송편 먹을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라고 하자 “아니에요. 그날 할 얘기 아직 더 많습니다.”라며 껄껄 웃는다.

 

 

그래! 까짓 송편이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어 밀려든 고독을 벗어버리는 시간만 있어도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그들과 헤어졌을 때 마음이 복잡해졌다. 송편만 있으면 될 것 같았는데 아닌 것 같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을 말하자 “그것 준비하려면 돈이 꽤 들어갈 텐데요.”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서로 나누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이야.”라고 하자 “그날 저도 올까요?”라고 한다. 그래 다 와도 된다. 작은 것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환한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이방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보듬으며 사는 것이 잠시나마 고독에서 벗어나는 힘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추석을 보내겠지만, 혼자인 우리는 우리끼리 멋진 추석을 보내는 것이 맞을 거야.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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