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한의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동시에 한의학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음양’과 ‘오행’이라는 개념에 대해 한번 이야기 해보자.
우선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장부론’이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해부론’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집고 넘어가자.
현대의학이 우리 몸속의 장기들을 공간적인 위치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면, 한의학은 우리 몸안의 장기들을 ‘기능’을 중심해 분류한다.
예를 들어 현대의학에서의 ‘폐’가 ‘가슴에 위치’한 호흡기능의 중추가 되는 큰 ‘두개의 덩어리’ 만을 의미한다면,
한의학에서의 ‘호흡기능’에 관여하는 모든 조직들을 통틀어 ‘폐’라고 부른다.
그러니 한의학에서의 ‘폐’는 현대의학의 ‘폐’를 물론이고 기도, 코, 피부, 땀구멍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
이렇게 기능을 중심으로 장부를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가 바로 ‘음양’과 ‘오행’이다.
특히 ‘음양’은 한의학에서 사용될 때 주로 ‘과한 상태와 부족한 상태’를 구분하는데 사용되는데,
일반적으로 ‘음’은 무엇인가가 부족한 상태, 또는 휴식과 관련된 작용을 지칭하고,
‘양’은 무엇인가가 과도한 상태, 혹은 활동과 관련된 작용을 지칭한다.
그래서 한의학의 ‘장부론’에서 주로 ‘휴식’이나 ‘저장’과 관련된 장기들을 ‘음’의 장기로 분류하고,
‘활동’이나 ‘소비’의 기능과 관련된 주 업무를 맞고 있는 장기를 ‘양’의 장기로 분류한다.
이러한 개념은 사실 현대의학에서도 똑 같이 사용되는데, 현대 해부학에서 ‘교감신경/부교감신경’, ‘자율신경/비자율신경’과 같은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현대의학보다 한의학에서 오히려 각각의 장기별로 그 특성과 기능을 더 자세하게 나누어 놓았다는 특징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한의학에서 ‘오행’은 어떻게 사용될까? ‘음양’의 개념을 통해 장기의 ‘핵심기능’을 분석하고 분류하였다면,
‘오행’을 통해서는 각각의 장기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는 지 그 ‘관계성’을 규명하였다.
우리 몸의 장기들을 에너지(기)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피가 온 몸으로 골고루 퍼지는 흐름이 꼭 ‘불이 퍼져 나가는 모양’과 흡사하다 생각하여,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심장’을 ‘불의 장기(화)’라 명명하는 식이다.
같은 관점에서 피를 깨끗하게 걸러 몸 밖으로 더러운 것들을 내 보내는 역할을 하는 ‘신장’은 ‘물의 장기(수)’라 부르고,
몸을 단단하게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간은 ‘나무(목)’으로, 외부의 것을 몸 안으로 담아내는(소화흡수)
역할의 위장은 ‘흙(토)’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걸러내어 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의 폐는 ‘금속제 무기(금)’으로 구분하였다.
이렇게 음양과 오행을 사용해 장기들의 역할을 구분해 놓고 보니, 임상적으로 신장의 기능이 약해지면 심장과 관련된 질환이 더 잘 생긴다는 것을 관찰할 수가 있게 되고,
이러한 현상을 ‘물의 기운이 약해져 불의 기능이 제어가 힘들어 지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한의학의 ‘오행’과 상응하는 개념으로 ‘내분비 이론’이 있다. 각각의 장기가 분비하는 호르몬이 장기들 사이의 길항작용에 관여해 균형을 이룬다는 이론인데,
이 내분비 이론에서 지금까지 규명해 놓은 장기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는 한의학의 오행론을 통해 바라본 장기들 사이의 관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즉 사용하는 용어와 설명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한의학의 ‘음양’과 ‘오행’이라는 개념은 이미 현대의학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현대의학에서 교감신경/부교감신경, 호르몬을 통한 장기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개념들이 생긴 것이 매우 최근의 일(100년 안팎)임을
감안하면 이미 수천년 전부터 이러한 개념을 확립하고, 이 개념들을 오랜 시간 검증하고 실생활(의료적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온 한의학의 성취가 더 ‘실질적’이고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한의학 개념들에 대한 깊은 이해는 자연히 한의학의 자연과학적 가치에 대한 재조명과 올바른 이해를 도와준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나 과정 없이, 단순히 자신이 익숙하지 않아
이해하기 힘들게 느껴지는 용어와 개념을 사용한다고 해서 한의학을 비과학적이라 생각해 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