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법 이야기 보다는 동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때 친한 누나가 있었습니다. 종종 선배누님 집에 놀러가면 형들도 있었고, 또 다른 누님이 저를 무척 귀여워 해주셨던 생각이 납니다. 또 그집에는 홀어머님이 계셨는데 저를 막내아들처럼 아껴주셨습니다. 늦게까지 누나네서 놀고나면 어머님은 꼭 저녁을 차려 주셨습니다. 80년도 후반이라도 한국사람이 하는 음식점이 뜸한때라 먹고 싶은 한국음식을 사먹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선배누님 어머님은 제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것을 아시고 틈틈히 맛있는 요리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생선요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님이 해주셨던 고등어조림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타주로 대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뉴욕, 시카고, 시애틀을 거치면서 결혼도 하고 공부도 마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다시 버지니아로 돌아왔을때는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고등어조림을 대할때마다 늘 선배어머님의 고등어조림이 생각이 났습니다. 고등어조림의 맛보다 늘 따뜻하게 대해주신 고마우신 그분의 마음이 생각난 것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2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저의 처가 하루는 바이올린 레슨을 해주는 학생의 할머니께서 고등어 조림을 남편에게 가져다 주라 하셨다며 집으로 가져온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것을 아는 집사람이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할머니가 그래도 가져가라고 하셔서 가져왔노라 했습니다. 저녁상에 올라온 고등어조림은 냄새부터 좋았습니다. 그날 저녁상 앞에서 저는 선배누님의 어머니 얘기를 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얼마 지나 고등어조림을 보내주신 할머님이 돌아가셨단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웠던 것은 그 할머님이 바로 제 고등학교 시절 선배누님의 어머님이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되어 가슴아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선배누님을 만나 고등어조림 얘기를 해주었더니 누님은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기전 종종 저의 이야기를 하셨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분이 고등어조림을 만드시면서 저를 생각하셨을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좀더 일찍 찾아뵙고 저의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리지 못한것이 후회가 됩니다. 작은 정성이 이렇게 저의 가슴깊이 남을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