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누구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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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을에 스스로 경건한 신자임을 자처하면서 교회에는 잘 다니고 있지만, 실제 품행은 매우 나쁜 사나이가 있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목사가 하루는 그를 불러 품행을 바르게 하라고 주의를 시켰다. 그러자 사나이가 말했다. “나는 정해진 날에는 꼬박꼬박 교회에 잘 다니는 경건한 신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목사가 “여보게, 동물원에 매일 간다고 해서 사람이 동물이 되는 건 아니잖은가?”라고 말했다. 이런 글귀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해 보겠노라며 큰소리 뻥뻥 치고 발걸음 힘차게 내딛는 우리, 그러나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가.

가끔 사람들은 “봉사를 열심히 하시는군요.”라며 인사를 하지만, 그 말씀 듣기가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들에게 해 준 것보다 해 주지 못한 것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사회에서의 봉사는 언어, 문화, 생활, 법규나 규칙 등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지만, 그런 것과 더하여 그들의 어려움마저 해결해 주어야 하는지는 정말 몰랐다. 삯을 세 방을 내놓은 곳은 많지만, 취사를 할 수 없는 곳이 많아 방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 방을 구했지만, 방세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 취사허락은 받았지만, 해 먹을 양식이 없어 쩔쩔매는 그들까지 감싸야 하는 것이 버거우므로 다가온다.

“이제 더는 약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고 하네요.”라고 말하는 수심 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어둡기만 하다. “에라! 나보고 어쩌라고? 뭘 어쩌란 말이냐고요?”라며 가슴 쳐 보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거기 누구 없소?”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 한 구절이 왜 떠오르는 것일까, 누구는 필요 없는 것 같다. 나 보고 작사를 해 보라고 한다면 “거 누구 없소”가 아닌 “거 돈 좀 없소?”라고 할 것만 같다. 구하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구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돈이라는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영 찾을 길이 없다.

어느 누군가가 “은행에 가면 돈이 많잖아요.”라며 껄껄 웃는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선 웃을 일이 아니라 울어야 할 일이었다. “빨리 무언가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라고 말하는 노인에게 기꺼이 일거리를 줄 누군가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집에서 해 먹을 것은 있어요?”라고 묻자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그의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비닐봉지에 하나 가득 오이지를 담아 주는 손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래도 여름 반찬치곤 오이지만 한 것이 없을 것 같다. “고맙습니다.”라며 봉지를 들고 나가는 구부러진 노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허무함이라는 것이 묻어나온다. 햇빛은 쨍쨍하건만, 그들의 이마엔 땀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는다.

‘그래 이것도 주님께서 감당하라고 나에게 보내 주신 것이니 한 번 해보지 뭐.’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또 불우한 이웃을 위한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 봉사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목욕은 공원에 가서 합니다.”라는 노숙자 어른, 잠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고, 식사는 그냥저냥 먹고, 옷은 이래저래 빨아 입고,,, 타국을 떠나 행복한 이민을 꿈꾸던 그들에게 이민의 희망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몸 하나 뉘일 공간을 찾아 떠도는 우리 한인들, 그들에게 미소 짓게 해 줄 거 누구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