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심히 거울을 들여다보니 처진 피부에 듬성듬성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는 빛을 잃어가고 머리는 하얀 세 치로 덮여있었다. 임플란트로 새롭게 치아를 끼우고 나니 다른 치아가 또 흔들린다.
한 줄의 글도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읽을 수 없고 찬물 한 잔도 이가 시려 먹기가 곤란하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만난 분이 “몇 년 전만 해도 곱기만 하던데 이젠 나이 든 태가 나네요.”라며 웃었다. 정말 내가 그렇게 늙었을까? 뚱딴지같은 생각에 옛날 사진과 지금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니 정말 나도 이제는 나이 든 노인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 무상하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무상하다는 세월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늙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몫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만이 노인이 되고 부모님만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덧 그 늙음의 몫이 나의 것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저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딸, 귀여운 자녀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리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는가 보다. 나도 나이가 들어 우리 부모님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병들고 늙어 죽어도 나만은 절대 늙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우리.
“내일 일도 모르는데 왜 사람들은 몇 년 후를 걱정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노인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머문다.
그게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늙어가는 우리의 가슴엔 영원한 청춘 같은 것이 숨겨져 가끔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앞으로의 일에 마음을 둔다.
“그래도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으니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하자, “앞날요? 글쎄요 그런 말도 맞겠지만, 병들고 아프고 살아가기 힘드니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네요.”라며 껄껄 웃는다. “이제 이 나이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몸은 늙고 병은 들고, 앞으로 우리가 맞아야 하는 것은 죽음밖에 더 있겠어요?”라는 노인.
늙음이 왔지만,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홀로 사는 삶이 어려워 무거운 몸을 휘청이며 한 푼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다.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뇨와 관절의 뼈아픈 고통과 아픔을 덜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노인의 절실한 삶, 어차피 갈 곳은 딱 한 곳밖에 없는데, 굳이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약값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쌀은 있으세요?”라고 하자 “저번에 주신 쌀이 아직 있어요.”라며 “먹는 건 걱정 안 해요. 약값하고 월세만 해결되면 걱정할 게 없어요. 그런데 그게 이렇게 힘드니 참 내!”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아픈 몸을 이끌고 끼우뚱거리며 거리로 나가야 하는 노인의 아픈 그 속마음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럴 바엔 아예 한국에 나가서 살지 왜 저렇게 살아요?”라고 쉽게 말을 뱉는 어떤 사람에게 “한국에 나가면 누가 반겨줄 사람이 있겠어요?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라며 톡 쏘아붙이는 내 심정도 그리 편하지 않다. 내 속도 내가 모르는 데 남의 속을 어찌 알까마는 어떤 누군가가 살아가기 위해 힘들어하는 그 모습만 가슴에 담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걷기 힘들어하며 늙어가겠지? 그래서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희망의 길이 아닌 바로 죽음의 길이리라,
그까짓 피부가 처졌다고 서러워 말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지 말자, 검은색 물을 들인다고 흰머리가 사라질쏘냐, 겉모양은 새파란 청춘 같지만, 몸속의 부속품은 서서히 녹슬어 먼 곳으로 갈 준비를 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우리는 늙음을 서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하긴 그래도 한세상 태어나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우리 마음속에 파묻혀 있잖아!
그래서 우리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자꾸 보고 또 쳐다보며 마음과 몸을 다스리며 먼 길을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