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얼굴만 비뚤어 지는 것은 중풍이 아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의 반쪽이 잘 움직여지지 않고, 음료수를 마시려 하니 입 한쪽으로 음료수가 주르륵 흘러 나와 버린다면… 누구나 적잖이 당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갑작스런 안면마비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구안와사’ 혹은 ‘와사풍’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그 원인을 찬 바람같은 풍한의 사기가 얼굴에 있는 경락으로 침습하는 현상에서 찾는다. 즉, 스트레스나 과로 같은 이유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있을 때 차가운 기운이 침범하면서 얼굴의 기혈을 막아버리니 근육이 경직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단 증상 자체가 ‘중풍’과 비슷하게 안면을 마비시키고, 또 병명 자체에도 풍(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에 이 구안와사를 많은 이들이 중풍과 혼돈하지만, 사실 이 두 질병은 병리학상 그 발생 기전이 전혀 다른 별개의 질병이다.
얼굴만 비뚤어지면 구안와사, 손과 발도 같이 불편해지면 중풍
중풍이 안면신경이 중심부인 뇌쪽에서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라면, 와사풍은 안면신경이 이미 뇌를 빠져나온 이후 지나가는 경로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렇게 병이 생기는 위치 자체가 다르므로, 와사풍이 심해진다고 해서 중풍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와사풍은 그 증상이 얼굴 한쪽, 혹은 심한 경우라도 목까지만 나타나는 반면, 중풍은 증상이 안면에서 시작해 팔과 다리까지 마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마비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만 자세히 살펴봐도 어느 정도 이 두 질병 사이의 간단한 구분이 가능하다.
안면마비는 잘못된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면 와사풍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일단은 외부에서 풍한의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침범하는 것이 가장 명확환 이유이지만, 사실 그 이전에 기혈의 부족, 스트레스, 어혈, 과음이나 과식처럼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인해 균형이 깨지고 허약해진 내몸이 좀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임상에서도 안면마비로 내원하시는 분의 대부분이 증상의 발병 이전에 이미 큰 스트레스나 과로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었다고 호소를 한다. 그리고 드물지만 대상포진같은 바이러스 감염도 안면 신경애 장애를 주는 원인이 될 때가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안면마비의 원인을 바이러스에서 찾지만…
문제는 이렇게 안면마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 사실상 증상으로부터는 와사풍 이라는 진단만 내릴 수 있고, 그 발병의 근본 원인이 된 요소는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대의학에서는 와사풍을 보통은 벨마비(Bell’s palsy)라는 명칭으로 부르면서, 헤르페스, 대상포진, 중이염처럼 감염이 원인이 되어 발생할 안면마비의 경우에만 그 인과 관계가 분명하다고 뜻에서 ‘람세이헌트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사용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인해 시작되는 람세이 헌트 증후군은 그 원인도 분명하고 심한 통증과 수포가 동반되어 비교적 증상만으로도 쉽게 구분이 가능하지만, 이는 전체 안면마비 환자에 비교하면 매우 극소수의 경우일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안면신경 마비 환자는 아직 현대의학에서 명확한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벨마비 환자들이다.
안면마비를 구분할 수 있는 증상들에는…
와사풍은 한쪽 안면근육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일단 와사풍에 걸리게 되면 한쪽 얼굴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얼굴이 비뚤어지고 눈이 잘 감기지 않게 된다. 양치질을 할 때 입 안의 내용물이 모두 흘러내리거나 마비된 쪽의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없는데, 마비된 쪽의 눈이 잘 감기지 않고 눈을 감으면 눈동자가 위쪽을 향하게 되는 것이 와사풍의 증상이다. 또 와사풍은 미각상실이나, 청각과민, 눈물이나 침의 분비에도 이상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중풍의 경우 와사풍과 비슷하게 얼굴에 마비가 오게 되는 경우라 해도 와사풍과는 달리 마비가 전체가 아닌 하반에만 일어나며, 미각이나 청각에는 아무런 장애가 생기지 않고, 안면 마비가 있는 쪽의 팔이나 다리의 장애또한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구분이 가능하다. 또한 와사풍의 경우 귀 뒤쪽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만 중풍에는 그런 증상이 전혀 없다.
구안와사는 초기치료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 중풍과 마찬가지로 와사풍 역시 초기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통계적으로 와사풍은 증상이 나타난 초기 3일안에 첫 치료를 시작할 경우 대부분 한달에서 두달안에 완치를 할 정도로 빠른 회복이 가능하다. 이는 질병의 초기에는 경맥에 들어온 풍한을 몰아내며 막혀 있는 것을 뚫기만 하면 금방 치료가 되는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치료가 가능한 시기를 놓치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치료를 시작하면 막힌 경락에 대한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이미 마비되어 퇴화한 근육과 신경을 복구하는 것에만 또 수개월의 치료기간이 추가되어 버린다.
구안와사의 치료 후 적절한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일단 와사풍은 면역력이 약해져 외부의 사기가 우리몸에 침입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 그 근본 원인이 되므로, 침으로 마비증상을 치료함과 동시에 면역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한약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물론 침만 가지고도 눈에 보이는 증상들에 대해서는 치료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만 그 근본원인을 남겨둔다면 언제고 다시 재발할 수 있음은 물론, 치료가 행해지는 중에 다시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