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일에 대한 열정으로 피곤하고 지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행복하였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잃고 찾아든 어려움으로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신문을 뒤적이며 이곳저곳에 전화해 보지만, 쉽게 그들에게 내어줄 일이 없다. “뭘 해야 할 지 정말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놀 수도 없고”라며 털어놓는 그의 사연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지만, 나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다.
시원하게 퍼붓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아무리 일자리가 많다 하더라도 수없이 많은 구직 자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졸이며 휘적거리며 문을 나서는 그의 등에 삶에 대한 갈증이 심하게 휘몰아 치는 것 같다. 그는 그토록 힘든 삶의 이야기를 왜 나에게 털어놓는 것일까? 그래도 희망을 안고 나에게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도 그에게 아무런 희망을 줄 수 없으니 세상살이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언제 어느 때 그들의 마음에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질 것인가, 그리고 허공에 대고 시원하게 박장대소하며 큰 웃음 한번 지어볼 것인가,
가련한 인생이었다. “월세 낼 돈이 없어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던 그의 말이 가슴에 답답하게 스며들어 나가지 못한다. 방세를 못 내면 나가야 하는데 어디 가서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던 그, 그러면 어쩔수 없이 길거리를 헤매며 잠을 청하겠지?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닐 것이다. 수없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취직을 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다 헛수고였다. 찬 밥 한 덩이를 데워 김치와 먹으며 그것도 감사하다며 고개 숙이던 노인.
베풀라고 했지만 베풀 것이 없고 주라고 했지만 줄 것은 오직 김치와 밥 한덩이 밖에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공간과 먹을 수 있는 끼니었다. 병을 안고 있지만 그것은 그래도 견딜수 있다고 했다.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살아야 했기에 힘이 들어도 아픈 고통은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갈 곳도 없으면서 그래도 희망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어디로 가야 그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겨울이 오기 전에 빨리 돈을 벌어 약도 사먹고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보이는 것은 오직 암흑같은 미로의 길밖에 없었다.
어느 가수가 부른 ‘살자니 고생이오. 죽자니 청춘이다.’라고 했던 가사가 생각난다. 그도 그렇게 말했다. “빨리 요르단 강이나 건넜으면 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라며 껄껄 웃던 그, 더 잘 살아보려고 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이 극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죽기를 희망할까? 죽는 것이야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인생이지만, 그렇다고 빨리 가기를 원하는 저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안타깝게 마음을 파고 든다.
“언젠가는 갈건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하자 “그러면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지 않을 거니까요. 아프지도 않을 것이고 방세 걱정도 하지 않을 것이고, 먹을 걱정도 하지 않을테니까요.”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내가 가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생명이 허락하는 한 이 세상을 한번쯤 멋지게 살아 볼 세상이 아니었든가, 주님께서는 두 개의 축복은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한 가지의 축복도 누릴 수 없다면 세상의 삶은 그야말로 살아가야 할 가치는 없을것이다. 그의 가슴에 맺혀 있는 한많은 사연을 누가 다 알까마는 그래도 언젠가 함박웃음 지을 날도 있을 것이다.
휘적이며 사라져 간 그의 가련한 인생이여! 오늘은 울었지만, 내일은 다시 웃음을 지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