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다지 먼 길을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어느덧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어려서는 빨리 나이 먹기를 고대하며 살았고, 나이를 먹었을 땐, 살기 바빠 세상 삶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았고,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어쩌랴 가는 세월을 잡을 힘이 우리에게 없으니 그저 이렇게 올 한 해도 무정하게 보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세월이 가면 늙는다는 것은 사실인데 어쩐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그것은 알고 보면 우리가 죽음의 길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요?”라고 하자 “별안간 죽음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오싹해지네요.”라고 대답한다. 이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다. 가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그 길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말하지 않아도 대답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툭하면 “빨리 죽어야 할 텐데”라고 말씀하신다. 왜 빨리 죽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차피 가야 할 그곳이라면 빨리 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날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삶은 괴뢰와도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것은 다시는 그날 그 시절을 만날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은 ”젊어서부터 지금 이 나이까지 일만 하고 살았는데 몸이 아파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어 은퇴해야 하는데 은퇴하고 난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였다. “글쎄요. 많은 사람이 은퇴 후에는 봉사활동을 하던데요. 그런 일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라고 하자 “몸이 병들어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일을 그만두자니 얼마 안 되는 은퇴 연금으로 살아갈 방법이 없고 참 씁쓸하고 답답하네요.”라고 하였다. “어디가 아프신데요?”라고 묻자 “당뇨도 생기고 관절도 생기고 그래서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라고 하였다. 일하던 사람이 별안간 일을 그만두게 되면 하루가 답답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세월을 보내야 할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벽만 바라보고 있기도 그렇고 일을 더 해야 하는 데 걱정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에게 “몸이 편찮으신데 일을 계속하시는 것은 힘드실 것 같은데 그냥 봉사 같은 것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라고 하자 “저는 봉사할 그럴 능력은 없고 다른 것 무엇이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봉사는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봉사가 아니라면 취미생활을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라고 하자 “저는 특별한 취미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요. 그냥 답답하네요. 봉사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요?”라고 묻는 그에게 “그것은 본인이 알아서 챙기셔야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봉사란 즐거운 마음으로,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이 봉사이다. 그런데 봉사할 마음이 없다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본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마 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찾는 게 아닐까 한다.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답답하네요. 그렇다고 온종일 방구석에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도 없고 그래서 한번 찾아와 보았어요.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까 해서요.”라며 혼잣말을 남기고 떠난 그 사람. 하긴 요즘 66세의 은퇴는 이른 것 같다. 70까지 일해도 끄떡없는 사람이 많은데 벌써 은퇴라니, 왠지 모르게 갑자기 늙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병이 들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은퇴해야 하지만, 그는 아픈 몸을 걱정하면서도 생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부디 그가 일거리를 다시 찾아 돈을 더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고 그렇게 살아가며 늙어가는 것이 삶이 아니었든가! 거리마다 골목마다 잎 바랜 낙엽이 뒹굴고 있다. 우리는 다시 또 한 해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낸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언젠간 우리도 마지막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이렇게 고독한 몸부림을 치며 팔랑거리며 사는 것은 아닐까? 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은 생을 행복을 찾기보단 행복을 나누어 주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www.ykcs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