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픈데 왜 손에다 침을 놓을까?

왜 아프지 않은 곳에 침을 놓을까
허리가 아파 한의원을 갔더니 다친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른쪽 손에 침을 놓아주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는 한의사가 좌병우치(左病右治), 우병좌치(右病左治), 상병하치(上病下治), 하병상치(下病上治)라는 독특한 한의학 원리에 따라 취혈을 하였기 때문인데, 이러한 한의학적 치료원리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는 많이 상반된다. 한의학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은, 으레 허리가 아프면 허리에 침을 맞을 기대하고 내원하기에 이런 상황을 맞으면 한의사가 아픈 곳을 착각했는가 싶어 자신이 아픈 부위를 다시금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통증이 있는 부위가 꼭 문제가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한의학에서는 왜 아프지 않은 부위에 침을 놓을까? 일단 가장 흔한 이유로는 환자가 지금 통증과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부위와 실제 의학적인 문제가 있는 부위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질환으로 디스크를 들 수 있다. 보통 디스크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은 망가진 디스크 근처보다 훨씬 아래쪽에서 통증과 저림증 같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목에 디스크가 생기면 팔이나 손가락 부분이 불편해지고, 허리디스크에 문제가 생기면 허벅지나 종아리 부근에서 저림증과 같은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그러니 이런 경우 치료의 주 타겟은 증상이 나타나는 손이나 다리가 아니라 목과 허리가 되야 한다. 비슷한 원리로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라도, 한의사가 통증의 원인을 머리가 아닌 간에서부터 올라가는 화(火)기로 판단한다면, 한의사는 증상이 나타나는 머리보다는 간경맥이 흐르는 다리에서 주로 취혈을 하여 치료를 하게 된다.

아프지 않은 곳을 고칠 때 더 빠르게 낫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는 통증부위 보다 다른 부분을 자침하는 방법이 더 큰 치료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행실에 문제가 있을 때, 꼭 본인에게 직접 메세지를 전하기 보다는 그 상급자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는데, 각각의 부위가 매우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우리 몸에서도 종종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긴시간, 만성적인 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경우 환부에 직접 자침을 할 때 그 침 자극이 충분하게 몸에 인식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 또 환부의 기혈흐름이 꽉 막혀 있을 경우는 직접 건드리는 것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가져오질 못한다. 그러니 이럴 때는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자리에서 취혈을 하는 것이 더 좋다.

어떤 침법은 아픔의 줄이는 방법 보다 회복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위 두가지 경우가 질병의 원인과 상태에 따라 취혈을 달리 해야 하는 경우라면, 침법의 기본 원리가 애초부터 환부를 피해 자침하게끔 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 나라 고유의 침법중 하나인 사암침법이 그렇다. 사암침법이란 이제마, 허준과 함께 조선 중기 3대 의성이라 불리우는 사암도인이 음양오행의 원리에 입각하여 창시한 침법인데 거의 모든 경우 아픈 곳과는 동 떨어진 곳에 침을 놓는다.
일반 체침법이 망가진 곳을 한의사가 직접적으로 수리하는 치료법이라면, 사암침법은 몸이 스스로 고치게끔 유도하는 것을 치료의 원칙으로 삼는다. 등산에 비유하면, 사암침법에서는 등반을 힘들어하는 등산객을 직접 정상으로 들어 옮기기 보다는 그 힘들어하는 이유를 파악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라 보면 된다. 이는 의사가 병을 직접 고쳐주는 것보다, 환자의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것이 ‘참된 치료’라 보는 사암침법의 독특한 관점 때문이다. 때문에 사암침법을 주로 사용하는 한의사는 가급적이면 통증이 있는 부위에 직접 자침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 필자 또한 기존의 사암침법을 이제마의 사상체질론에 맟춰 응용한 사암체질침법이라는 독특한 침법을 사용하기에 거의 모든 경우 아픈 곳과는 동 떨어진 곳에 침을 놓는데, 그래서인지 본원에는 처음 내원시 당황하시는 분들이 많다.

한의사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기대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치료를 해준다면…
이처럼 각 한의사가 선호하는 침법의 치료 원칙, 질병의 원인, 혹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저마다 다른 위치에 다르게 침을 놓는 현상은 사실 한의학에서는 흔한 경우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한의원에 가서 침구 시술을 받을 때 ‘아 여기 맞겠구나’하고 예상했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 침을 맞는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가 없겠다. 또 임상을 하다보면 환자 본인이 예측한(?) 곳과 다른 곳에 다른 치료를 받을 경우,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치료법(부황같은…)을 해 줄 것을 직접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그 치료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한의사가 엉뚱하다 생각되는 곳에 침을 놓을지라도 질문을 통해 자신이 받는 치료에 대해 최대한 이해하고 한의사의 치료원칙을 존중하는 것이 옳은 대처법이다. 혹여나 한의사가 제안하는 치료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경우라면 본인이 원하는 치료를 강하게 요구하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치료원칙을 가지고 있는 다른 한의사를 찾아가는 편이 서로에게 유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