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삶

완연한 봄인가 했는데 아직 차가운 기온 때문에 다시 겨울옷을 입은 것을 보고 누군가 “그래도 그렇지 이제 봄인데 스웨터 입은 걸 보니 좀 그렇네요.”라고 한다. “내 나이 되어 봐. 그럼 나보다 더 두꺼운 옷을 입을걸”이라고 말하니 그가 배시시 웃으며 “그럴까요? 나이가 들면 추위를 더 탄다고 하던데 그런가 봐요.”라고 한다. 어느덧 우리는 이렇게 볼품없이 늙어 따뜻한 봄날에도 두꺼운 겨울 스웨터를 걸치는 나이가 되었을까, 얼굴엔 주름이 늘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가고 골다공증 걱정하며 열심히 비타민도 먹어보지만, 그렇다고 젊음이 다시 오는 것도 아니련만, 우리는 오늘 하루도 더 늙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렇게 사는 것 같다.

 

 

젊은 여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찾아왔다. 아직 생생하게 파란 젊음을 만끽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할 그녀의 얼굴엔 왠지 모르게 수심이 가득하다. 긴 머리를 뒤로 제치며 아이를 끌어안는 그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무슨 일로 오셨나요?”라고 조심스레 묻는다. 그녀가 “상담 좀 받으려고 왔어요.”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다. 아이 아빠하고 이혼한 지 4년 되었다는 그녀, 일해야 하는데 아이 맡길 때도 없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그녀는 “아이 아빠가 양육비를 주지 않아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부부가 무슨 이유로 이혼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상담을 할 때마다 그의 고통이 나의 온몸으로 날아들어 온다. 나는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안내해 주면 될 일이지만, 그녀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보여 마음이 무겁다. 어찌하여 만남의 기쁨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슬픔과 괴로움의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말았을까,

 

 

가난이야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고, 슬픔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일어설 수조차 없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힘들어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저 여인의 모습이 아련하게 마음을 저미게 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없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닌 바로 나의 탓이기 때문이었다. 잘 한 것도 나의 탓이오, 못 한 것도 나의 탓이리라. 자녀의 재롱을 바라보며 훗날의 행복을 꿈꾸며 사랑하며 살 그 나이에 무슨 이유로 홀로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힘들게 그녀는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봄이 왔건만, 나는 늙어 겨울옷을 입고 입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어 두꺼운 외투를 입은 것은 아니었을까?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랠 힘도 없는 듯 물끄러미 아기를 바라보던 그녀, 봄꽃은 아름답게 피어 환하게 웃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엄동설한 추위 속에 갇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었다. 지금의 고통은 언젠간 사라져 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힘듦을 추억하며 환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아직은 그녀에게 청춘이 있기에 너무 애처롭게 생각되지 않는다. 뛰고 또 뛰고, 날고 또 날아 언젠가 찾아올 행복의 그 날을 위해 열심히 뛰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의 절망을 디딤돌로 삼아 이겨낼 힘만 있어도 우리의 미래엔 행복의 그림자가 서서히 찾아들기 마련이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모든 사람에겐 항상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겨내야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그녀가 “그래야겠지요. 저만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며 “그래도 자기의 아기 양육비까지 주지 않는 애 아빠가 너무 미워 죽이고 싶은 마음마저 들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 잊으세요. 잊을 수 없겠지만, 마음을 두지 마세요. 그래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는 저 눈을 보세요. 엄마가 괴로우면 아기도 괴롭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세요.”라고 하자 “그럴 거예요. 악착같이 살 거예요.”라는 그녀가 그제야 칭얼대는 아기를 가슴에 안는다.

 

 

사람은 선하게 살 수 없어도 악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 누구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삶을 살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삶이 아닐까 한다. 저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 그 남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사는지 모르겠지만, 미움은 가슴에서 쓸어버리고 앞으로 찾아올 희망의 날만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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