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

아주 유명한 대중 가수가 ‘어메’라는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해 그리움을 노래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한 많은 자신의 삶을 어머니에게 하소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를 생각하기보단, 추억과 잊혀져간 옛일을 다시 떠오르게 하였다.
생각하면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옛 추억이었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과거일 수도 또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세월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어떤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다시 태어난다면 두 번 다시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우리는 이미 그 세월을 다시 또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어차피 우리는 늘그막에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후회를 했을 것이다. ‘뭣 하려고 날 낳았던가!’ 라는 그 대목을 들으며 ‘여보게 그래도 어머니가 날 낳았기에 그런 세월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가?’라고 묻고 싶다.

 

 

섬뜩하게 내 살을 파고드는 차가운 기온에 몸을 움츠리며 “그래도 무더운 여름보단 추운 겨울이 더 좋다.”라고 하자 “아이고, 배부른 소리 하시네요. 갈 곳 없는 사람, 돈 없는 사람은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추운 겨울을 좋다고 할 사람 없네요.”라며 말대꾸를 한다. 그런가? 지금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춥다며 몸을 움츠릴 때 어머니는 나의 손등을 손으로 주무르며 매만져 주었고, 덥다며 땀을 뻘뻘 흘리는 나에게 부채를 흔들어 주며 땀을 식혀주지 않았던가. 그런 어머니가 없는 지금, 갈 곳 없는 이에겐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까 집이 무척 썰렁했어요. ‘어머니’라는 그 이름이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름인 줄 몰랐다는 게 참!”이라며 한숨을 쉬는 그의 얼굴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배여 있었다.
어머니가 가신지 어느덧 두 세월이 되었다. ‘어메’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젠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동지섣달 겨울이 오니 더욱 그리운 것이 바로 ‘어머니’는 아닐까, 그 어머니는 지금 갈 곳 없어 거리를 방황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고, 배고픈 자식을 보며 애절한 고통으로 자식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는 노인은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암이라는 병보다 더 슬픈 것은 지신을 돌보아 줄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것이 더욱 슬펐다.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거칠어진 손끝으로나마 자식이 먹을 수 있는 죽이라도 끓여 주겠지만,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빈 벽을 바라보며 한숨으로 지내야 하는 노인의 모습이 가련하기만 하다. 혼자 약을 챙겨 먹어야 하고, 혼자 병원에 다녀야 하고, 그리고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하는 노인은 “제대로 먹을 수 없어 더 힘이 듭니다.”라고 하였다.
병이야 의사가 고쳐주겠지만, 늘그막에 혼자 겪어야 하는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구나 이 추운 겨울 홀로 병마를 이겨내야 하는 노인,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냥 한 마디 주고받는 그 말 한마디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던가! 노인은 “어쩔 수 없지요. 제 인생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것을”이라며 빈 웃음을 짓고 있지만, 노인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아파할까? 얼마나 고독하게 홀로 밤을 새울 것인가, 노인은 빈 천장을 바라보며 지나온 추억을 그리며 어머니를 생각할 것이고, 어디선가 살고 있을 자식을 그리워하며 눈물짓고 있을 것이다. 과거야 어찌 되었든, 한 많은 세상살이를 뒤돌아보며 그래도 그리운 것은 오직 어머니일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머니를 그리워 했던 옛 추억을 하소연하며 눈물지을 것이다.
‘어메’ 그랬다. 아프거나 슬플 때 나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홀로 지새는 이 밤이 덜 외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아파서 눈물 흘리는 그의 배를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어머니. 끼니 때문에 걱정하는 그의 배를 채워 줄 어머니. “정부에서 나오는 것 가지고 살아가기 너무 힘들어요. 더구나 거의 매일 병원 다니고 약 사 먹어야 하고,”라는 노인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파고든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여유가 없다 보니.”라는 말 한마디가 썰렁할 뿐이다.
그리고 휘청이며 문을 나서는 노인의 등이 너무 굽어 망연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아! 어머니, 어찌하오리까? 어찌하면 좋으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