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서의 한의학 (1) – 한의학 본질에 대한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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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의학을 업으로 삼아 살아간다는 것은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편견들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한의학 이론의 기본 바탕이 되는 음양, 오행, 기(氣)와 같은 용어와 관점들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의술을 피다 보면,
치료자의 역할 뿐 아니라 교육자의 역할까지 무리없이 수행해야만 환자들이 믿고 따라와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한의원을 찾는 이들에게 한의학의 기본이 되는 동양 과학의 기본 원리를 매번 상세히 설명하는 편인데,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의 본질은 과학’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외국환자들이 오히려 한국인보다 이러한 한의학의 본질에 대해 더 올바른 이해를 지니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실, 한의원까지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현대의학에서는 불치/혹은 난치로 규정하는 지병을 가지고 있어,
이미 현대의학을 통한 여러 종류의 치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미 본인의 질환에 대해 의사(?)에 준하는 정도의 지식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레 여러 경로를 통해 한의학에 대한 지식까지도 습득하게 되기도 하고,
아무래도 전혀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러 오는 입장이기도 하니 이미 사전에 침술의 과학적인 치료기전이라던지에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살펴보고 온 분들도 많다.
반면에 오히려 한국인 환자분들은 이미 한의학에 대해 익숙하다는 느낌과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일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넘어서는 수준의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도(道)’와 같은 철학적인 영역과 혼돈하기도 하고,
한의학의 치료 원리가 아직 ‘과학적으로는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신비주의의 한 부분’이라는 식으로 이미 오래전에 해결된 오해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선, 한의학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오해는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한의학이 과학인지 철학인지에 대한 혼란에서 오는 한의학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한 오해가 있을 것이고,
둘째로는 현대의학 체계와는 전혀 다른 한의학적인 치료가 지닌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오는 ‘한의학적 치료체계는 과연 그 효과가 검증되었는가’ 와 같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의학만의 독특한 이론들과 관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이론들이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낡아버려
더 이상 그대로 사용되기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실용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 즉, ‘부분적 수용론’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한국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아니 심지어는 한의학을 업으로 삼는 많은 한의사들까지도 잘 못 이해하는 부분을 뽑자면
처음에 언급한 ‘한의학 본질 그 자체’에 대한 오해를 뽑을 수 있다.
몇 몇 한의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한의학은 과학이 아닌 철학이다’ 라는 주장은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한의학이 동양철학과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은 사실이고 또 한의학만의 많은 전통적 치료원리들이 동양철학적인 사상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하지만 두개의 학문이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였다 해서 그 현재의 모습까지도 동일시하는 것은 꽤나 논리적인 비약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한의학은 인체를 중심으로 그 사상을 객관화 정형화하며 다친 몸의 회복 기능을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또 다른 한쪽은 정신적인 접근법을 중심으로 상한 감정의 회복을 돕는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지금의 동양철학과 한의학 사이의 간극은 마치 하버드 의대 교수와 주장과 소크라테스의 주장 사이의 간극만큼 떨어져 있다.
그러니 지금의 현대의학의 시작이 서양철학의 ‘물질 환원주의’와 ‘이원론’에 있었다 해서,
또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나 명화들의 구조 속에서 철저하게 계산된 수학적 원리과 비율들이 발견된다고 해서
현대의학을 서양철학이라 하지 않고 클래식음악을 수학작품이라 하지 않는 것과도 마찬가지로,
한의학의 본질을 동양 철학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