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오는데!

산마다 거리마다 단풍으로 예쁘게 단장하는 가을, 온갖 색동옷 입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노란 해바라기 활짝 핀 가을,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가을을 만나기 전에 이미 가을은 저 멀리 가버리고 말았나 보다. 어느덧, 겨울 부츠를 신고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은 사람들 모습이 눈에 보인다. “올겨울엔 눈이 많이 내린다는데 걱정이 많아요.”라고 중얼거리는 그를 보고 “겨울엔 눈이 와야 제멋이 아닐까?”라고 하자 “겨울이니까 눈 내리는 것이 맞는데 너무 추우면 어떻게 해요?”라고 하였다. 하긴, 날이 너무 추우면 그렇지 않아도 서러운 셋방살이가 고달픔일 것이다. “요즘 너무 추워서 히터 좀 켜면 안 되겠냐고 주인한테 말하니까 ‘벌써 무슨 히터를 켜느냐?’라며 어림없다고 하네요.”라고 말하며 그가 몸을 움츠린다.

 

 

어렵게 사는 사람에겐 없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서러운 것 같다. “전기장판 하나 사려고 했더니 그것도 굉장히 비싸던데요?”라며 “추워서 그거라도 하나 사서 깔고 자려고 했더니 비싸서 그냥 왔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다가올 추운 겨울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고민인 모양이다. “하긴, 그거 깔고 자다가 주인한테 걸리면 전기 요금 더 내라고 하겠지요?”라고 말하며 싱긋이 웃는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미소는 미소가 아니었고 그의 말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는 그저 내던지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몸도 성치 않은데 춥게 자면 잘못하다 중풍 맞을 수도 있어요.”라고 하자 “주인이 그것까지 생각할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한다. 그렇지, 어차피 세 준 사람은 주인이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은 그저 나그네일 뿐이다. 손바닥만 한 방 한 칸 세 주고 주인이 누리는 ‘주인’이라는 것에 대한 갑질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 지금도 쌀 나누어 주실 수 있나요?”라는 노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쌀이 필요하세요?”라고 묻자 “지금 먹을 것은 있어요. 그런데 겨울이 오면 그것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어떨까 해서요.”라고 한다. 우리는 그의 주소를 묻고 쌀 한 포를 배달해 주었다. 그가 “그렇지 않아도 차 있는 사람한테 부탁하려고 했어요.”라며 힘없는 손을 들어 쌀을 받는다. 그의 모습이 어쩐지 모르게 누추해 보인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라고 묻자 “먹는 약이 많아요.”라며 여러 가지 약병을 들어 보인다. 당뇨, 고혈압, 관절염 등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노인의 작은 방에는 먹을 음식보다 약이 더 많아 보인다. 자식들 모두 시집 장가가고 아내도 나이 많아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다. “저도 빨리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지 못해 이렇게 부지한 생명 이어가고 있네요.”라며 허허 웃는 그 웃음도 행복하여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이제 이렇게 쌀도 있으니 올겨울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하더니 “하긴 내년 봄까지 살 수 있는지 아니면 그 안에 죽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노인을 뒤로 한 채 그 집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오니 누군가가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노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 일할 곳이 없을까요?”라고 한다. “지금 연세가 있어 보이는데 일하시려고요?”라고 묻자 “사실 제가 불체자예요. 그러니 보험도 없지 일할 곳도 마땅치 않아 살기가 너무 막막하네요.”라고 한다.

 

 

불체자!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바로 불체자이다. 특히 이민법이 강화하다 보니 그들이 설 자리가 없다. 그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아내도 몸이 성치 않아 자신이라도 일하여 돈 벌어야 하는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취직은 제가 어떻게 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이제 돈도 없고 방세도 내야 하는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 한잔을 다 마시고 난 후 그가 일어섰을 때 “혹시 저희에게 쌀이 있는데 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정말 감사하지요.”라며 밝게 웃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쌀 두 포를 차에 실어주었다. 취직은 시켜 줄 수 없지만, 그래도 쌀 두 포를 받아 감사의 인사를 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일 수밖에 없는 마음이 무겁다. 아! 어쩌랴! 살아가야 하는 것도 고난일 수밖에 없는 것을!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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