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날고 싶은 새

그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어렵고 고달프고 못난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그녀의 불행은 결혼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신만 알고 이웃은커녕 가족에게도 배려할 줄 모르는 야멸찬 남편과의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 맺어진 인연이었다. 그러나 이미 태어난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어렵지만, 파경까지 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녀는 더는 남편과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집에 살면서 남과 같이 살아왔던 부부, 지난 수년 동안 각기 다른 방을 쓰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밥상에 앉아 밥을 먹지 않은 부부는 부부가 아닌 남이었고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면서 그녀가 얻은 것은 심한 우울증이었다. 한마디를 할 때마다 눈물짓는 그녀는 “그래도 미국에 오면 좀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해서 이민을 왔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긴 한숨을 내 쉰다.

과연 이 부부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냥 처음부터 ‘나중에 나아지겠지’라는 기대감으로 모른 척 살아왔던 것도 문제였을 것이고, 혹은 “어디 두고 보자!’ 라고 벼르며 산 것이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나 있는 자식을 생각하며 그냥 참고 살아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바보같이 왜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남편을 만나 함께 3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그녀가 얻은 것은 단 한 순간의 기쁨도 없었던 불행이었고 얻은 것은 마음속을 꽉 채운 정신적인 병이었다. “헤어지게 되면 집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요. 그래서 정 안 되면 노숙자 집에라도 들어가 살아야 할 것 같아요.”라며 고개를 떨구는 그녀는 단 한 푼의 위자료도 주지 않을 남편에 대한 분노보다는 훨훨 날아다니는 새가 되어 마음 편히 사는 것이 훨씬 더 큰 행복이라고 했다. 아내에게 버림받고 이혼을 준비하는 어떤 남자도 “이제 어렵고 힘들지만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새가 되어 행복합니다.”라며 미소를 띠는 것을 보면 결혼의 고통이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몸을 떨며 후회하면서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어 했을까?

요즘은 수명이 길어 백 세까지도 살 수 있다지만, 백 살은 그만두고 단 몇십 년 만이라도 웃을 수 있는 행복이 그들에겐 없었다. 이제 모든 것 다 걷어치우고 어려워도 힘들어도 홀로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정말 진저리나요. 왜 내가 헤어질 생각을 빨리 못했는지 그것마저도 후회돼요.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너무 기뻐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 하얀 미소가 흐른다. 그를 만나 행복하게 살자고 했지만, 그를 만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서러움과 고통이었다. “이혼하자고 남편에게 말했어요?”라고 묻자 “말 안 했어요. 말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아이에겐 말했어요. 그러니까 아이도 잘했다고 하네요. 그냥 나가서 이혼 신청할 거예요.”라고 한다. 미워도 고와도 아이까지 낳고 살아온 삶을 그녀는 아무 미련 없이 청산하고 있었다. 어떤 남자는 “생각만 해도 지겨워요. 지금 이렇게 혼자 사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요.”라고 한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새삼스럽게 ‘과연 부부가 행복해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자녀 때문에 사는 부부라면 그것은 결코 행복한 결혼 생활이 아니다. 너와 내가 1순위가 되어야 한다. 자식은 2순위여야 하는데 자식을 낳고 보면 남편보다 아이, 아내보다 아이에게 더 집중한다. 그것은 아이를 낳기 위해 하는 결혼이지 너와 나를 위한 결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많은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있으니 헤어질 수 없어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할 수 없이 사는 거지요.”라고,

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내 가족도 행복할 수 있고, 내가 있기에 내 가족이 있는 것이다. 내가 슬프고 고통스러우면 가족의 삶도 슬픔이고 고통이다.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뿐, 자식도 남편도 나의 행복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들은 거기에 있어 주는 것이다.
날아다니는 새도 날개가 성해야 훨훨 날을 수 있으련만 상처로 꿰매진 날개로 어떻게 저 먼 세상을 훨훨 날아갈 수 있을는지. 그들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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