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길과 EZ Pass 이야기

피맛길은 종로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6가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가리키는 서울의 지명으로 말을 피한다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되었다한다. 당시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던 시절인지라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종로통에서 가마나 말을 타고 행차하는 고관대작들을 만나면 이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있어야 마땅했다. 그 때는 법도가 그랬다. 그래서 백성들이 이런 번거로움과 거들먹을 피해 종로통 이면도로인 이 좁은 골목길, 즉 피맛길을 자연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근세와 근대를 거치는 동안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어엿한 상권으로 발전하였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청진동 행장국집이며 빈대떡과 오밀한 생선구이 연기와 여기저기 올망졸망한 백반집 등으로도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조선시대 당시 전체 양반들의 인구가 채 4%가 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게다가 삼대를 거푸 벼슬길에서 멀어진 이른바 선비로 불려진 남산골 양반들이나 조선팔도에 흩어져 몰락한 지방토호의 양반들을 빼면 실로 한양에서 내노라 거들먹 거릴 수 있는 높은 분들이 1%나 되려나 하여튼 그 1%의 실세들을 위한 배려치고는, 아니 그 나머지 99%의 양보치고는 지나친 면이 있었다.
이제 시간은 흘렀고 둥근 지구의 바다와 대륙을 넘어 대서양 이쪽의 일로서 바로 어제의 일이다. 가능한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495를 탔다 역시 한결같이 막히는 도로에서 E-Z PASS 간판 밑에서 쌩쌩 달리는 유료도로의 흐름을 무심히 바라보다 은근히 치미는 부아를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돌아보건데, 내가 살아온 한 길은 대략 공평했다. 내가 가는 길이 유료라면 너나할 것 없이 공평히 유료였고, 그것이 무료라면 균등히 무료였다. 그래서 길은 어디까지나 공적이었고 균등했던 이유로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마저도 불길하게 옛이야기가 된 것 같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 일천한 관계로 담넘어 남의 집 정원과 수영장을 탐냈던 적은 없었으니 어디까지나 그건 울타리 넘어 남의 집 이야기어서 다행히 시샘도 고깔울 것도 없이 어지간 했다.
허나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유재산이 될 수 없는 길 만큼은 그 차원을 달리한다. 예나 지금이나 길은 자원이 대단히 한정된 사회간접 자본이다. 따라서 공동의 자산이며 선대가 과거 순혈의 세금으로 일구어 놓았고, 우리가 사용 유지하다 왜소한대로 후대에 남겨줄 유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시절이 바뀌어 그런 그 길에 그러니까 우리의 양보와 희생 위에서 만들어진 길에 줄 하나를 그어 돈을 받는 공권력이 있다하자. 푼돈이 겁나지않는 이들은 글자 그대로 급행료를 내고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이른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일상의 좌절과 출퇴근의 무게를 한숨과 식은 커피로 달래고 있는 한편 우리 아이들은 쓸쓸한 밥상머리에서 그들의 가장을 기다린다.

 

 

다이아몬드 차선이라 불리는 HOV도 취지가 좋아 이해했고 막히면 막히는 대로 함께 맞는 비라 여겨 고까운 심정이 없었다. 물론 극대화된 산업사회과 효용이라는 측면에서 일반보다 먼저 도착하여 욕심껏 해결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리하여 고단한 몸을 저택에서 먼저 쉬겠다는 것 뭘 뭐라하겠는가. 그런데 그들이 누린 속도가 일반의 희생위에서 가능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잘못 태어난 그런 제도이거나 또 어쩔 수없이 잘못 구현된 제도라면 그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되어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그런 후회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비행기에도 비지니스석과 그보다 더한 것이 있지만 고작 $4.75에 그 자리를 넘기지는 않는다. 이코노미석보다 무려 3배이상을 더 치루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게다가 도착시간은 같아 참을 만했다. 오히려 똑같은 노선에 나보다 3배이상 더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내 현명함에 얼마나 기특해하며 통쾌했던지…

 

 

샤핑몰에가도 발렛파킹이 있고, 그렇다고해서 그로인해 내가 주차할 공간이 없다거나 너무 불편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잘난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수용가능했다. 그런데 E-Z Pass는 겪을 때마다 찜찜하고 받아 들이는 심기가 사뭇 달랐다. 대단히 주관적이겠지만 인내와 관용을 넘어 언뜻 죄지음이나 용서가 연관되는 어떤 것이었다면 내가 지나친 것이었을까 .
정리하면 그렇다 마치 우리가 동굴에서 살던 시절 한쪽에서는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넘치는 음식물로 썩어간다면 또 다른 한쪽에서 느끼는 감정이 상대적 박탈감이나 분노말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싶다.

 

 

아침해가 뜨고 석양이 있는 한 어김없이 보스톤 뉴저지와 아틀란타 그리고 플로리다와 캐롤라이나에서 출퇴근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E-Z Pass가 없다면 푼돈이 두려운 99%, 우리모두가 집에 한 5분쯤 일찍 도착한다면 그 또한 가치있는 일이 아닐런지 아니면 99%가 양보하여 적어도 푼돈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걷어들여 99%의 차량등록비라도 면제해 준다면 또 모를까 말이다.
결국 나는 효용이 의심가는 실용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사람의 심리를 헤아리는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간다면 효용과 실용을 앞세워 언젠가는 우리가 인컴택스에 기준하여 투표권을 부여 받고 그래서 우리의 참정권이 0.5표니 3.5표이라면 영향력 있는 트럼프는 곱하기 십만표에 해당하고 기여도 있는 빌게이츠는 곱하기 4천만표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매 2분마다 좌절하는 출퇴근의 495에서 쌩쌩거리며 질주하는 EZ Pass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맹랑하고 가소롭지만 매가리 없이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 완고한 트래픽이 너무 심해 신물이 났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