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고, 눈이 많이 와서 사고가 나는 걸까?

이곳 버지니아에서는 태풍이나 폭설이 올 때마다 항상 난리가 난다. 폭설이나 태풍 주위보가 뜨게 되면 몇 일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생필품들이 동이 나기 시작하고, 평소엔 20-30분이면 충분히 오가던 거리는 폭설과 태풍으로 인한 사고들 때문에 최소한 2-3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 되어 버린다. 어디 이 뿐인가?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관공서나 학교 같은 공공 시설들이 최소 몇 일은 문을 닫아 버리니 일상의 평온함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버지니아, 메릴렌드, DC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폭설이나 태풍에 대한 소식이 뜨면 한숨을 쉬면서 순식간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이 자연재해(?)가 어서 지나가기만을 숨죽이고 기다린다. 그런데 시카고에서 살다 온 본인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이러한 광경이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생경하다. 시카고에서는 여기보다 훨씬 많은 태풍과 폭설이 매년 오지만, 사실 그 쪽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이런 혹독한 날씨에 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전임 대통령도 처음 백악관에 도착한 해 겨울, 이 유난한 ‘눈 내리는 날의 DC 풍경’에 많이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걸 보니, 이러한 현상을 본인만 이상하게 느끼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정말 이 곳 버지니아 사람들이 겪는 날씨로 인한 어려움들이 눈 때문이고, 태풍 때문일까? 그럼 왜 이 곳보다 훨씬 바람도 쎄게 불고 눈도 많이 오는 시카고나 보스톤 같은 도시의 사람들은 별로 혹독한 날씨로 인한 피해를 받지 않고 살까? 일례로, 2011년 시카고에서 60인치의 폭설을 몰고 눈태풍이 왔을 때도 시카고의 관공서와 학교는 단 하루만 문을 닫았고, 본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이튿날부터 생업으로 바로 복귀했던 기억이 있다. 만약, 버지니아에 오늘 60인치 가량의 눈이 왔었다면 그 여파는 훨씬 어마 어마 했을 것이다.

홍수의 근본 원인은 너무 많이 내린 비가 아니라, 배수시설의 부족함이다.
본인은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홍수의 근본 원인은 너무 많이 내린 비가 아니라, 배수 시설이 부족함이라고 생각한다. 또 운전하기 어려울 만큼 길이 위험해 지는 것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많이 내린 눈 탓이 아니라, 애초에 눈이 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어진 도로 시스템 때문이다. 즉, 환경의 변화와 혹독함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를 예상하지 않고 대비하지 않았던 안이함과 부주의함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안이한 상황인식의 근본 원인은 사실 ‘혹독한 환경’이 아니라 ‘너무도 좋은 환경’이다.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시카고의 환경과 미국의 수도가 위치한 DC 근교의 버지니아 중 과연 어느 쪽의 환경이 더욱 혹독할까를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스트레스성 질환의 근본 원인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바라 보는 관점의 이상이다.
이렇게 조금만 관점을 바꿔 바라보면 깨닫게 되는 ‘버지니아 주민들이 나쁜 날씨가 아닌 너무도 좋은 날씨 때문에 폭설과 태풍의 피해를 더 받는다’는 역설적인 법칙은 그대로 우리 몸에도 적용된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거의 매일 같이 보게 되는 두통, 불면증, 가슴 떨림, 안구 건조, 뒷목 통증, 소화 불량과 같은 증상들은 모두 심인성 질환들인데, 이 질환들의 공통점은 그 이면에 육체의 이상보다 심리적인 불안정함이 더 깊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어려움을 적게 겪을수록 어려움에 더욱 취약하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다 보면, 생각보다 ‘진짜 나쁜 상황’에 처해 이러한 질병을 겪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힘들겠구나’ 싶을 상황에 처하신 분들에게는 오히려 이러한 심인성 질환들이 잘 나타나질 않는다. 마치 이곳 버지니아의 날씨처럼 너무도 좋은 환경에서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오던 이들이, 아주 가끔씩 내리는 눈과 어쩌다 부는 바람을 감당 못해 심신을 망가뜨리는가 하면, 오히려 항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히려 큰 고난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아프지 않고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가는 힘이 있다.

밤이 어둡다고 불평하지 말고, 어두운 밤을 지새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혜
밤이 어둡다고, 겨울이 춥다고, 겨울에 눈이 온다고 불평하는 사람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혹독한 외부 환경을 문제의 핵심으로 바라보는데, 이러한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들이 ‘해결할 길이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밤을 밝게 만들고,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 눈이 오지 않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밤이 어두워지고, 겨울엔 눈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그러한 변화에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모든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눈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눈이 오지 않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보다, 눈이 많이 오는 상황을 대비하는 이가 더욱 지혜로움은 두 말 할 것도 없다.